토비아스 마이어 DHL그룹 최고경영자

정의선 회장과 로봇·전기차 도입 확대 논의

AI 붐에 만족말고 공급망·산업 다변화 필요

AI·DC 수요 압도적…기술로 관세장벽 극복

토비아스 마이어 DHL그룹 최고경영자가 서울에서 열린 ‘제19회 아시아·태평양 독일 비즈니스 콘퍼런스’ 직후 헤럴드미디어그룹과 인터뷰에서 한국을 지정학적 순풍을 탄 국가 중 하나로 꼽으며 협력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윤창빈 기자
토비아스 마이어 DHL그룹 최고경영자가 서울에서 열린 ‘제19회 아시아·태평양 독일 비즈니스 콘퍼런스’ 직후 헤럴드미디어그룹과 인터뷰에서 한국을 지정학적 순풍을 탄 국가 중 하나로 꼽으며 협력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윤창빈 기자

토비아스 마이어 DHL그룹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을 지정학적 재편의 수혜국으로 꼽았다. 이번 방한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만난 마이어 CEO는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보스턴다이나믹스를 ‘좋은 파트너’라고 평가하며, 물류 현장의 로봇 활용을 넓혀가겠다고 밝혔다.

마이어 CEO는 서울에서 열린 ‘제19회 아시아·태평양 독일 비즈니스 콘퍼런스(APK 2026)’를 계기로 지난달 31일 헤럴드미디어그룹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은 현재의 지정학적 환경에서 혜택을 볼 것으로 보는 국가 중 하나”라며 “이들 국가와 함께 고객에게 가치를 더할 수 있는 중점 산업에 특별히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DHL그룹은 국제특송과 항공·해상 화물운송, 계약물류 사업을 하는 세계 최대 물류기업이다. DHL은 공급망 재편으로 무역·투자가 몰리는 국가를 ‘지리적 순풍(Geographic Tailwinds·GT) 국가’로 꼽아 공략하고 있으며, 생명과학·헬스케어, 신에너지, 반도체를 포함한 데이터센터 물류를 중점 산업으로 키우고 있다.

마이어 CEO는 올해 세계 무역 흐름을 ‘기술이 관세를 이긴다’로 요약했다. 그는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AI) 관련 수요가 관세의 부정적 영향을 압도하고 있다”며 “올해 상반기 세계 무역은 코로나19 이후 반등기를 제외하면 지난 15년 중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 경제에서도 AI 붐에 노출된 일부 기업만 큰 혜택을 볼 뿐 경제와 사회 전체가 그 효과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라며 “반도체 산업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편이 낫지만, 전체 경제에서 적절한 산업 구성인지는 정책적으로 판단할 문제”라고 평가했다.

방한 기간 정의선 회장과도 다시 만났다. 마이어 CEO는 지난달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방한을 맞아 연 만찬에서 정 회장 옆자리에 앉아 자동차 시장의 방향과 로봇 기술 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1월 첫 방한 때도 정 회장을 만나 로봇·목적기반차량(PBV) 협력을 논의한 바 있다.

그는 “현대차가 보유한 보스턴다이나믹스는 DHL의 좋은 파트너”라고 말했다. DHL은 2022년 보스턴다이나믹스와 물류 로봇 ‘스트레치’ 도입 계약을 맺고 이듬해 북미 물류센터에서 처음 상용화했다. 지난해 5월에는 스트레치 1000대를 추가 도입하는 업무협약(MOU)을 맺고, 단순 공급 관계를 넘어 공동 개발·검증으로 협력 범위를 넓혔다. 적용 지역도 북미에서 영국과 유럽으로 확대하고 있다. 스트레치는 트럭·컨테이너에서 상자를 시간당 최대 700개까지 자동으로 내린다.

마이어 CEO는 “상하차와 팔레트 작업은 인력이 많이 들고 신체적으로 힘든 일”이라며 “로봇이 이를 도우면 더 나은 일자리와 경제성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스트레치가 표준 규격 상자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은 진전”이라며 “앞으로는 폴리백처럼 인식하고 집기 어려운 화물도 다루도록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AI 도입도 속도를 내고 있다. DHL은 통관처럼 서류를 읽고 비교해 양식을 작성하는 업무에 AI를 우선 적용하고 있다. 마이어 CEO는 “단순한 시범 도입을 넘어 실제 적용 규모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전기 배송차 분야에서도 한국 기업과의 협력에 문을 열어뒀다. DHL코리아는 기아와 업무협약을 맺고 전기 PBV ‘PV5’를 도입하고 있다. 마이어 CEO는 “한국 제조사와 전기차 분야에서 협력하는 것을 매우 환영한다”며 “2030년대 초에는 배송 차량이 거의 전부 전기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DHL은 현재 약 6만대의 전기 배송차를 운영하고 있으며, DHL코리아는 2030년까지 배송 차량을 모두 전기차로 바꾼다는 목표다.

한국 물류 시장에서는 아웃소싱 확대를 기대했다. 한국 대기업들이 물류를 직접 처리해 온 만큼, DHL의 국내 사업은 특송에 집중돼 있다. 마이어 CEO는 “경제가 성숙하면 많은 기업이 핵심 역량에 집중하면서 물류를 아웃소싱한다”며 “미국에서 시작해 유럽과 아시아로 확산된 이 흐름이 한국에서도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매일 아침 물류를 생각하며 일어나고, DHL코리아 동료들 역시 한국 최고의 특송 사업자가 되는 것만 생각한다”며 “이런 전문화가 더 나은 품질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에는 공급망의 선택지를 확보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규제 환경의 변동성은 계속될 것”이라며 “비용이 다소 들더라도 단일 공급처나 공장에 의존하지 말고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급망 재편은 DHL에는 기회라고 봤다. 마이어 CEO는 “고객이 거점을 다변화할 때 한 나라에서 하던 업무를 다른 두세 나라에서 빠르게 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구가 1990년부터 약 30년간 누린 평온한 시기가 오히려 예외였을 수 있다”면서도 “세계 경제와 무역이 여러 충격 속에서도 잘 버티고 있다는 점은 낙관할 이유”라고 강조했다. 권제인 기자


eyr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