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만머핀서 개인전 ‘새로운 연속’

신작 ‘영혼의 빛’, 조각 등 35점 공개

“계획은 계속 작업하는 것…일이 곧 삶”

김윤신 작가가 4일 서울 용산구 리만머핀 서울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현경 기자]
김윤신 작가가 4일 서울 용산구 리만머핀 서울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현경 기자]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100살이 넘어서까지 작업하고 싶어요. 작업을 하다가 그 순간에 떠나는 게 제 꿈이에요.”

한국의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91)의 하루는 여전히 작업으로 채워진다. 아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매일 점심부터 저녁까지 작업실에서 나무를 다듬고, 집에 돌아와서 그림을 그린다.

그에게 작업은 단순히 작품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삶 그 자체다. 서울 한남동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리는 개인전 ‘새로운 연속’을 앞두고 4일 기자들과 만난 김윤신은 “내가 해야 되는 것, 내 일이니까, 그게 내 삶이니까 꾸준하게 하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말했다.

5일부터 다음 달 2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신작 회화 연작 ‘영혼의 빛’을 비롯해 나무 조각, 회화-조각 등 35점을 선보인다.

김윤신 ‘영혼의 빛 2025-53’. [리만머핀 서울 제공]
김윤신 ‘영혼의 빛 2025-53’. [리만머핀 서울 제공]

이번에 처음 공개하는 회화 연작 ‘영혼의 빛’은 기하학적인 구조와 씨앗, 꽃, 물결 등을 연상시키는 유기적인 형태를 결합한 작품이다. 생명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순환의 힘을 담고 있다.

작가는 평면 회화에서도 나무 작업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리듬과 생성의 힘을 탐구한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쌓고 긁어내거나 찍어내는 행위를 반복하며 색채와 신체적 행위를 역동적 화면으로 구현한다.

김윤신은 “붓으로만 그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며 “무언가를 붙이거나 찍어내기도 하는데, 찍어내는 순간마다 내 감정과 힘이 담기기 때문에 같은 재료와 형태를 사용해도 똑같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대표적인 조각 연작인 ‘노래하는 나무’도 선보인다. 기존 나무조각 바탕에 알루미늄으로 주조한 뒤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한 ‘노래하는 나무 1984-11U1’(2025)은 방향마다 서로 다른 색채와 무늬가 드러나는 작품이다. 관람객은 작품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새로운 인상을 받게 된다.

조각의 표면에 그림을 그려 넣은 작품을 김윤신은 ‘회화-조각’이라고 명명한다. 그는 “3차원인 조각에 2차원의 그림을 넣었을 때 전체적으로 어떤 느낌을 줄 수 있는지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며 “‘회화-조각’이라는 이름을 미술사에 하나 남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윤신 ‘노래하는 나무 1984-11U1’. [리만머핀 서울 제공]
김윤신 ‘노래하는 나무 1984-11U1’. [리만머핀 서울 제공]

김윤신의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개념은 1970년대부터 발전시켜 온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다. 이는 서로 다른 요소들이 합쳐지고 나뉘는 과정을 통해 기하학과 자연, 땅과 하늘, 인간과 우주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는 작업이다.

이는 작가 본인과 작업과의 관계이기도 하다. 평생을 작업에 몰두해 온 그는 작품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다고 털어놨다.

김윤신은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작업할 때 내 힘과 정신, 모든 것이 그 속에 들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을 느낀다”며 “그 순간에는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해도 들리지 않을 만큼 몰두한다”고 말했다.

전시에서는 신작뿐 아니라 2000년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던 시절 제작한 ‘환희’와 ‘원초적 생명력’ 연작도 만날 수 있다. 남미의 광활한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근원적인 생명력을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의 작품을 통해 수십 년간 이어진 작가의 예술적 탐구가 어떻게 변화하고 확장됐는지 살펴볼 수 있다.

김윤신 개인전 ‘새로운 연속’ 전시 전경. [리만머핀 서울 제공]
김윤신 개인전 ‘새로운 연속’ 전시 전경. [리만머핀 서울 제공]

예술에 평생을 바치며 현대미술계에 한 획을 그은 김윤신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답이 의외로 단순하다. “계속 작업하는 것”이다. 아직도 작업할 때가 가장 행복하단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다작보다 발전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그는 “그냥 작품을 많이 남기는 게 아니라 후손들이 먼저 간 작가의 정신이 어디에 담겨 있는지 느끼고, 거기서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도록 뭔가 하나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윤신은 1959년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전공했다.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약 40년간 남미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200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설립했다.

2024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뒤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해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됐으며, 올해는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최근에는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하버드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는 등 국제 미술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pin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