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전히 찬란하게’ 입소문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개봉한 지 일주일 만에 이 정도로 영화관 수가 줄 영화가 아닐 것 같은데….”
지난달 28일 네이버 영화 평점란에 올라온 한 관객의 글이다. 상영하는 극장을 일부러 찾아가 봤다는 이 관객은 “판단이 맞았다”며 10점을 매겼다.
배우 김혜자(85)가 9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감독 송일곤)가 줄어드는 상영관을 입소문으로 버티고 있다. 걸리는 극장은 빠르게 줄었지만, 극장을 나선 관객들이 남긴 점수는 박스오피스 상위권 영화 가운데 가장 높다.
4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여전히 찬란하게’는 지난 3일 하루 1620명을 모아 박스오피스 10위에 올랐다. 전날보다 네 계단 오른 순위로, 누적 관객은 6만4082명이다. 지난달 21일 개봉 첫날 7666명을 모으며 6위로 출발했고, 첫 주말 562개였던 스크린은 3일 228개까지 줄었다. 개봉 2주 만에 상영관이 절반 아래로 내려앉았다.
개봉관 숫자와 무관하게 관객의 평가는 정반대의 곡선을 그려가고 있다. 네이버 관람객 평점은 9.80점으로, 네이버 박스오피스 평점순 1위다. 2위 ‘오디세이’(9.03점), 4위 ‘암살자(들)’(8.89점)과도 큰 차이가 난다. 평점란에는 10점 만점 감상평이 열두 쪽 넘게 이어진다. “송일곤 감독의 빛은 설명하지 않고 비추며, 김혜자 배우의 얼굴은 그 빛 속에서 한 생애의 결을 조용히 드러낸다”는 평은 특히 많은 공감을 받았다. 눈물에 대한 고백도 줄을 잇는다. 긴팔 옷을 입고 간 한 관객은 “양쪽 소매가 다 젖었다”며 손수건을 꼭 챙기라고 권했고, 또 다른 관객은 오랜만에 영화를 보며 오열했다고 털어놨다.
김혜자의 연기만큼 자주 불리는 이름은 열일곱 살 순옥과 정임이다. 소녀 시절을 연기한 박서경과 최주은을 두고 한 관객은 “눈빛이랑 표정으로 감정이 다 전해진다”고 적었다. 최주은에겐 이번 작품이 첫 영화이자 첫 주연작이다.
영화는 1942년 한 시골 마을에서 출발한다. 노래를 빼어나게 잘하는 정임(최주은 분)과 그 곁에서 늘 손뼉을 쳐 주는 순옥(박서경 분)은 서로의 팔에 둘만의 증표를 새기고, 서울에 올라가 노래하며 돈도 벌자고 약속한다. 그 무렵 마을에는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며 소녀들을 데려간다는 흉흉한 소문이 돈다. 60년 뒤, 오래 찾아 헤매던 정임(차미경 분)을 다시 만난 순옥(김혜자 분)은 어릴 적 함께 꿈꾸던 노래자랑에 나가려 서울행을 결심한다. 그러나 정임은 순옥의 이름도, 함께한 시간도 조금씩 잊어 가고 있다. 낭독극 형식의 희곡이 원작으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서 처음 공개됐다.
송일곤 감독은 앞서 지난달 15일 언론시사회에서 “역사적 이야기가 있어 조심스러웠지만, 과거의 아픈 역사를 어떤 식으로든 지금 기억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고 연출 이유를 밝혔다. 관객들의 감상도 같은 자리에 닿는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졌다”는 글 옆에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 “오래도록 기억되어야 할 가슴 아픈 역사”라는 평이 나란히 놓였다. 개봉 첫날 평점란에 한 관객은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찬란하게 기억되길”이라고 적었다.
배급사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는 개봉 3주 차를 맞아 장기 상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기업 단체 관람도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극장 밖에서도 상영을 넓혀 달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국회사무처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여전히 찬란하게’를 인권과 역사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로 소개하며 “국회 구성원과 국민들이 볼 수 있도록 국회에서 상영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고용진 국회사무총장은 의원회관 대회의실 등에서 추천을 받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작품을 골라 상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노래도 관객의 귀에 오래 남았다. 한 관객은 “영화 속 장면과 OST가 상영이 끝난 뒤에도 계속 맴돈다”고 했다. 정임의 노래와 순옥·정임·두영(문성현 분)이 어우러지는 뮤지컬 장면이 화제에 오르자, 배급사는 뮤지컬 배우 최재림과 최주은이 함께 부른 OST ‘찬란하게’의 뮤직비디오를 4일 공개했다. 녹음실에서 두 사람이 눈을 맞추며 노래하는 모습 사이로 두 소녀의 찬란했던 장면이 겹친다. 최재림은 “참 좋은 영화의 일부분이 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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