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KBS 1TV ‘한국인의밥상’]
[KBS 1TV ‘한국인의밥상’]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1939년 일제강점기 인천에서 태어난 최불암의 어린 시절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는 최불암이 여섯 살 무렵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그는 외갓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 외할머니가 자주 만들어주던 음식이 무짠지였다.

무를 소금에 절이기만 하면 만들 수 있는 무짠지는 오래 보관할 수 있어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집에서도 두고 먹기 좋았다. 무짠지로 허기를 달래던 고마운 기억 때문인지, 최불암은 배우로 성공한 뒤에도 밥상에 무짠지를 두곤 했다. 무짠지는 그에게 평생을 함께한 소울푸드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갓집에서 자랄 때 무짠지를 많이 먹었어요. 무짠지가 밑천이 안 드는 반찬이었거든. 무를 소금에 절이기만 하면 됐어요. 가난한 살림살이 때문이었는지 외할머니가 무짠지를 그렇게 먹였어요. 지금도 밥상에 무짠지가 있어야 해요.”

무짠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짠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불암에게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었다. 마음을 채우는 일이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인연이었고, 삶의 소중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였다. 아내 김민자가 해주는 묵은지찜을 마지막 한 끼로 꼽았을 만큼 음식에 담긴 정과 기억을 소중히 여겼다.

최불암은 한국 음식의 특징을 ‘가난 속 창조’라는 말로 설명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서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던 어머니들은 주어진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해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냈다. 그에게 한국인의 밥상은 부족함을 지혜로 채우고 가족을 향한 사랑으로 완성한 음식이었다. 외할머니가 만들어준 무짠지를 평생의 소울푸드로 간직한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KBS 1TV ‘한국인의밥상’]
[KBS 1TV ‘한국인의밥상’]

최불암의 그런 철학은 그가 14년 동안 진행한 ‘한국인의 밥상’에도 잘 엿보인다.

최불암은 음식을 통해 사람을 기억했다. 전북 남원에서 추어탕을 촬영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음식에 넣은 산초가 좋다고 이야기했다. 촬영이 끝난 뒤 한 어르신이 마을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문지에 산초 한 숟가락을 정성스럽게 싸서 건네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좋아한다는 말을 기억하고 작은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최불암은 이 일화를 떠올리며 “음식보다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음식은 국경을 넘어 사람을 이어주기도 했다. 2012년 가을 ‘한국인의 밥상’ 촬영을 위해 뉴욕을 찾은 최불암에게 파란 눈의 미국인 부부는 직접 텃밭에서 기른 깻잎으로 장아찌를 만들어 내놓았다. 최불암은 그 깻잎장아찌를 맛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훗날 눈물을 흘린 이유에 대해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의 위대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불암은 영면에 들었지만, 무짠지와 깻잎장아찌를 볼 때 우린 다시 그를 떠올릴 것이다. 최불암이 그랬듯, 요리를 통해 우리는 그의 따뜻함을 다시 느끼고 한 시대를 풍미한 최불암이라는 추억을 다시 꺼내볼 수 있지 않을까.

배우 최불암 [연합]
배우 최불암 [연합]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