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87세…29일 입원 치료 중 별세

드라마·영화·연극 누빈 67년 국민 배우

전원일기·수사반장…‘파하~’ 너털웃음

생전 40여년 인연 ‘초록우산장’으로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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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국민 아버지였고, 불의를 참지 않는 수사반장이었고, 한국의 맛을 찾아 전국을 누빈 길손이었던 국민 배우 최불암이 별세했다. 향년 87세.

30일 방송가에 따르면 최불암(본명 최영한)은 29일 밤 10시께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재활에 매진했으나, 최근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임종은 아내인 배우 김민자와 가족이 지켰다.

1939년 인천에서 태어난 최불암은 서울 중앙고와 서라벌예대·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꿈은 연출가였지만, 1959년 극단 ‘실험극회’에서 연극 ‘햄릿’으로 데뷔하며 배우의 길로 접어들었다. 1965년 국립극단 단원이 된 것이 본격적인 연기 활동의 시작이다.

1967년 서울중앙방송(현 KBS) 특채 6기 탤런트로 뽑혀 처음 받은 배역은 드라마 ‘수양대군’의 노년 김종서였다. 20대에 맡은 50대 중년이었다. 1969년 MBC로 옮겨서는 개국 드라마 ‘역풍’에서 서른 살에 노인을 연기했고, 40대엔 ‘제1공화국’(1981~1982)과 ‘제2공화국’(1989~1990)에서 80대 이승만을 맡았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조연이든 노역이든 가리지 않았다. 지난 5월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에서 백일섭은 “젊어서 늙어버렸다”고 돌아봤다. 최불암 스스로는 “연기는 몸이 아니라 생각으로 하는 일”이라 여겼다. 다큐멘터리의 프리젠터 박상원은 “나이도 옷처럼 자유롭게 갈아입을 줄 아는 배우였다”고 했다.

‘수사반장’의 한 장면.  [MBC 제공]
‘수사반장’의 한 장면. [MBC 제공]

1971년 시작한 MBC ‘수사반장’에서는 18년간 880회 동안 박영한 반장으로 살았다. 최고 시청률은 70%를 넘었다. 박 반장은 권총과 수갑 대신 하얀 손수건을 들었다. 범인은 총이 아니라 정신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어머니의 조언에서 나온 설정이었다. 극 중 흡연 장면을 두고 육영수 여사가 국민이 따라 피울까 걱정된다며 전화를 걸어온 일도 있었다. 배우의 몸짓 하나가 안방 깊숙이 번진다는 것을 최불암은 그때 실감했다. 경찰은 2024년 최불암을 민간인 최초로 명예 국가수사본부장에 위촉했다.

1980년부터 22년간 이어진 ‘전원일기’에서는 양촌리 김 회장으로 ‘국민 아버지’가 됐다. ‘개구리 남편’(1969)부터 ‘궁’(2006)까지 수십 년을 함께한 김혜자와의 부부 연기는 실제 부부로 착각하는 시청자가 많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일찍 아버지를 잃은 최불암은 그 빈자리를 연기의 재료로 삼았다. 2007년 KBS 1라디오에 출연했을 당시 그는 “아마 없는 아버지를 상상해서 내놓는 것이 배우로서는 더 좋은 작업일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두심은 그런 최불암을 두고 “구석에 앉아 계셔도 그냥 구수한, 투박한, 질그릇 같은 아버지”가 떠오른다고 했다. 1981년 극 중 금동이 입양 에피소드는 초록우산과의 40여 년 인연으로 이어졌다.

생전 고인의 대표작인 ‘전원일기’  [MBC 제공]
생전 고인의 대표작인 ‘전원일기’ [MBC 제공]

오래 입은 배역일수록 벗는 일이 숙제였다. 월간 ‘샘터’ 대담에서 최불암은 좋은 연기를 하려면 캔버스처럼 맑아야 한다며, 배역이 끝나면 “칠판을 닦듯이 지워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를 부를 때는 ‘광대’라는 말을 골랐다. 넓을 광(廣)에 큰 대(大), 국민에게 알 권리를 전하는 사명을 지닌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스크린에서는 ‘달려라 만석아’(1979)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최후의 증인’(1980)으로 제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대 그리고 나’(1997~1998)의 ‘캡틴 박’으로는 아버지상의 틀을 비틀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권유로 1992년 14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2011년부터 14년간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을 이끌었다. 마지막 연기는 2024년 ‘수사반장 1958’이었다. 노년의 박영한으로 나와 먼저 떠난 동료 형사들의 무덤 앞에서 경례했다.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를 준비하며 최불암은 “오랜 시간 저를 사랑해 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게 광대의 마음”이라고 했다. 고인의 마지막 말이 됐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지며, 장례위원장은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이 맡았다. 유족으로 김민자와 아들 동녘, 딸 동비 씨가 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