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대신 온라인서 정자 제공자 찾아
매칭 사이트 회원 7000명, 이용 급증
성병 감염·성관계 강요 등 피해 우려
태어난 아이의 친부 알 권리도 논란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일본에서 병원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으로 만난 남성에게 정자를 제공받아 임신을 시도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정자 제공자를 연결해 주는 인터넷 사이트에 수천명이 몰리는 가운데 성병 감염부터 학력·혼인 여부를 속이는 사기, 동의 없는 성관계 요구까지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27일 일본 NHK에 따르면 최근 일본에서는 의료기관을 통하지 않고 개인 간에 정자를 주고받는 사례가 확산하고 있다. 기존 난임 치료 제도의 높은 문턱과 비용 부담을 피하기 위해 온라인 매칭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일본의 현행 비배우자 간 인공수정(AID) 제도는 법적으로 혼인한 부부 가운데 남편이 무정자증인 경우 등으로 이용 대상이 제한돼 있다. 이 때문에 미혼 여성이나 성소수자, 기존 제도를 이용하기 어려운 난임 부부들이 개인 간 정자 제공에 눈을 돌리고 있다.
실제 회원 수가 약 7000명에 달하는 일본의 한 주요 정자 제공 매칭 사이트에는 매달 100~200명의 새로운 제공자가 등록하고 있다.
이용자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비용도 있다. 의료기관을 통한 시술과 달리 개인이 자원봉사 차원에서 정자를 제공하면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금전적 대가를 지급할지 여부도 당사자 간 합의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다.
정자 전달 방식도 일반적인 의료기관의 시술과는 다르다. NHK에 따르면 공여 남성이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항균 용기에 정액을 채취하고 바늘이 없는 주사기와 함께 놓아두면, 이후 여성이 들어와 직접 정액을 체내에 주입하는 방식이 주로 활용된다. 제공자와 수령자가 직접적인 성접촉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의료기관의 검사와 관리 없이 이뤄지는 개인 간 정자 제공은 각종 위험에 노출돼 있다.
대표적인 문제가 성병 감염이다. 제공자의 건강 상태나 감염 여부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자를 전달받을 경우 감염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일부 제공자가 정자 제공을 빌미로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자신의 학력과 혼인 여부를 속이는 사례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자 제공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허위 정보를 걸러낼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자 제공으로 태어난 자녀의 권리도 논란이다. 익명으로 정자를 제공받아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된 뒤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해 정체성 혼란과 심리적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익명 정자 기부가 이뤄져 왔다. 이를 통해 태어난 자녀가 1만명 이상으로 추산되지만, 정확한 규모와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해외에서는 정자 제공으로 태어난 자녀의 알 권리를 보장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 호주 일부 주에서는 정자 제공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비익명 정자 제공을 법으로 의무화했다.
일본에서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자녀가 자신의 출생 내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비익명 정자은행이 설립되는 등 제도 개선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난임 치료와 출산을 원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기존 제도의 범위를 넘어서면서 개인 간 정자 제공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이를 관리할 법적 장치는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정자 제공자의 건강과 신원 확인은 물론 태어날 자녀의 권리까지 보호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sj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