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지지율 29%로 보수당·개혁당 제쳐
에너지요금·교통비 인하 등 민생 정책 집중
물가 3.5%·성장률 둔화에 경제 회복 난항
첫 예산안·EU 관계 재설정 시험대 올라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앤디 버넘 영국 총리가 27일(현지시간) 취임 100일을 맞았다. 한때 극우 성향 영국개혁당에 두 자릿수 격차로 뒤졌던 집권 노동당의 지지율을 1위로 끌어올리며 정치적 반전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고물가와 저성장, 유럽연합(EU)과의 관계 재설정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어 취임 초기의 인기를 실질적인 국정 성과로 연결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버넘 총리는 지난 7월 20일 키어 스타머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영국 총리로 취임했다. 2017년부터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을 세 차례 지내며 중앙 정치 무대와 거리를 뒀던 그는 올해 5월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이 참패한 뒤 차기 총리 후보로 급부상했다.
스타머 전 총리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노동당 내부에서 지도부 교체 요구가 커졌고, 버넘 총리는 단기간에 총리직에 올랐다.
취임 이후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노동당 지지율 반등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추적한 여론조사 추이에 따르면 현재 노동당 지지율은 29%로 제1야당 보수당(22%)과 영국개혁당(21%)을 모두 앞서고 있다.
지난해 말 노동당 지지율이 영국개혁당에 최대 10%포인트 뒤졌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다.
노동당이 지지율 1위를 되찾으면서 버넘 총리가 조기 총선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다음 총선은 늦어도 2029년 여름까지 치러야 한다.
버넘 총리의 지지율 상승에는 민생 중심의 정책 행보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취임 당시 “국민의 일상에 숨통을 틔우겠다”고 약속한 뒤 에너지 요금과 교통비 인하, 노숙자 문제 해결 등에 정책 역량을 집중했다.
지방 분권 확대에도 속도를 냈다. 수도 런던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하겠다는 공약에 따라 맨체스터에 북부 총리실을 신설했다.
이민 문제에서도 전임 정부와 비교해 개선된 지표가 나타났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스타머 전 총리 취임 후 첫 100일 동안 영국해협을 건너온 이주민은 1만4000명에 육박했지만 버넘 총리 취임 이후에는 약 8500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산됐다.
다만 이 같은 감소세는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정부의 이민 단속 강화 정책에 따른 것으로, 버넘 정부만의 성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전임 정부의 낮은 인기에서 비롯된 반사이익도 작용했다.
스타머 정부가 교도소 과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조기 가석방 제도는 여론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버넘 총리는 취임 이후 해당 제도를 재검토하고 조기 가석방 대상자를 줄이면서 정책 차별화에 나섰다.
그러나 취임 초기의 이른바 ‘허니문 효과’가 끝나가면서 버넘 총리가 실제 정책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정부 내부의 한 비판론자는 “그는 지금 대담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는데 실제로 대담한 일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 시험대는 28일 존 힐리 재무장관이 발표할 버넘 정부의 첫 정기 예산안이다.
현지 언론들은 대규모 세제 개편이나 정책 변화보다는 기존 정책을 유지하는 수준의 예산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업무용 차량 운전자에 대한 세제 혜택, 일부 식품 관세 폐지, 유류세 동결, 자영업자 남성에 대한 2주간의 출산휴가 제공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문제는 영국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영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3.5%로 잉글랜드은행(BOE)의 물가안정 목표치인 2%를 크게 웃돌았다.
지난 8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0.1%에 그쳤다. HSBC는 이날 영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2%에서 1.1%로 하향 조정했다.
물가 상승 압력이 여전히 높은 가운데 성장세마저 둔화하면서 민생 부담을 줄이겠다는 버넘 총리의 공약 이행에도 제약이 따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유럽과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지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버넘 총리는 다음 달 EU 정상들과의 회담을 앞두고 영국과 EU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재설정할지 국가적 차원의 토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히 EU 재가입과 회원국 간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는 ‘이동의 자유’ 문제까지 논의 대상으로 언급하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쟁점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지난달 말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밝힌 소선거구제 개편과 사회복지 제도 개혁도 추진 과정에서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예상된다.
BBC는 “지난 100일간 노동당 하원의원들은 활기를 되찾았고 버넘 정부는 스타일도 기조도 스타머 정부와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제 경제적, 정치적으로 일련의 까다로운 결정과 선택이 다가온다”고 지적했다.
sj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