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공격에 미 외교 인력 철수
테니스·골프는 대회 연기하는데
투기 종목만 10~12월 개최 강행
[헤럴드경제=조용직 기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무력 충돌에 따른 안전 우려로 테니스와 골프 등 국제 스포츠 대회가 잇따라 연기·취소되고 있다. 그러나 복싱과 종합격투기(MMA), 프로레슬링 등 투기 종목은 개최 방침을 고수해 대조를 이룬다. 미국 정부가 외교 인력 철수까지 명령한 상황에서 선수와 관계자들의 안전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22일 사우디 주재 비필수 정부 인력과 가족들에게 철수를 명령했다.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이 민간 공항과 주요 기반시설을 공격하면서 인명 피해와 항공편 운항 차질이 발생한 데 따른 조치다.
수도 리야드의 킹칼리드 국제공항은 지난 10일 공격으로 최소 12명이 숨지고 300명 이상이 다쳤다. 이후에도 공격이 이어지면서 공항 운영이 중단됐고, 일부 항공편이 재개됐지만 운항 차질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복싱 스타 사울 ‘카넬로’ 알바레스(36·멕시코)와 크리스티앙 음빌리(31·캐나다)의 세계복싱평의회(WBC) 슈퍼미들급 타이틀전은 오는 31일 리야드에서 예정대로 열린다.
사우디 스포츠·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주도하는 투르키 알알셰이크는 카넬로가 경기 개최 의사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프로모터 오스카 델라호야(53·미국)는 대회 취소나 장소 변경을 촉구했다. 트레이너 로버트 가르시아도 공항이 공격받는 상황에서 선수와 관계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겠느냐며 우려했다.
미국 프로레슬링 단체 WWE도 다음 달 7일 리야드에서 열리는 ‘크라운 주얼’ 개최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일부 직원들이 현지 방문에 불안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WWE는 전문 보안업체와 협력하며 행사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UFC 역시 12월 5일 리야드에서 열리는 ‘UFC 파이트 나이트’를 예정대로 추진하고 있다. 전 미들급 챔피언 이즈리 아데산야와 러시아의 샤라부트딘 마고메도프가 메인이벤트에서 맞붙을 것으로 알려졌지만, UFC의 공식 대진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데이나 화이트 UFC 최고경영자(CEO)는 중동 지역 대회 일정을 변경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TKO의 복싱 프로모션인 주파 복싱도 다음 달 14일 리야드에서 별도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반면 다른 종목들은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이달 리야드에서 열릴 예정이던 테니스 이벤트 ‘식스 킹스 슬램’은 12월 말로 연기됐고, 다음 달 18~21일 예정됐던 아시안투어 사우디 인터내셔널 골프대회도 무기한 연기됐다.
11월 초 개최 예정이던 국제사이클연맹(UCI) 어반 사이클 세계선수권은 취소됐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제다에서 열릴 예정이던 FIFAe 파이널스 2026을 연기했다. 사우디가 국가적으로 중시하는 대형 투자회의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마저 이달 말 개최 계획을 접고 내년으로 미뤘다.
투기 종목들이 개최를 고수하는 배경에는 사우디와 격투기·프로레슬링 산업의 긴밀한 사업 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UFC와 WWE는 모두 미국 스포츠·엔터테인먼트 기업 TKO 그룹 산하에 있으며, TKO는 사우디 자본이 참여하는 주파 복싱 사업도 운영하고 있다.
대회 장소를 변경할 경우 경제적 부담도 크다. 20일 투자은행 구겐하임은 WWE 크라운 주얼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UFC 333, 카타르 도하의 UFC 파이트 나이트 등 중동 지역 행사 3건이 모두 다른 지역으로 옮겨질 경우 TKO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7000만~9000만 달러(약 1000억~1300억원) 감소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구겐하임은 중동 지역의 불확실성을 반영해 TKO의 목표주가를 235달러에서 228달러로 낮췄다.
격투기 전문매체 언크라운드의 벤 파울크스 기자는 23일 칼럼에서 미국이 외교 인력까지 철수시키는 상황에서 굳이 무력 충돌 위험이 있는 지역에서 스포츠 행사를 개최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불상사가 발생한다면 대회 주최 측이 거센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yjc@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