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 과제 19건 발굴…9종은 적용 목표 차종 선정
산업부·현대차·LG전자 ‘원팀 TF’ 출범
참여 기업·기관 53곳…1년 새 두 배 가까이 확대
설계부터 검증·양산까지 국산화 협력 강화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현대모비스가 국내 반도체 기업들과 차량용 시스템반도체 13종의 국산화 개발에 착수했다. 이 중 9종은 적용을 목표로 하는 차종까지 선정했다. 지난해 삼성전자·SK키파운드리 등과 구축한 협력체계가 실제 개발 단계로 진입한 가운데 정부까지 지원에 가세하면서 해외 의존도가 높은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의 체질 개선에 속도가 붙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21일 경기 성남시 더블트리 바이 힐튼 서울 판교에서 제2회 차량용 반도체 포럼 ‘오토 세미콘 코리아(ASK)’를 개최했다.
ASK는 완성차 업체와 부품사,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팹리스), 위탁생산업체(파운드리) 등이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 지난해 출범시킨 협의체다.
국내 차량용 반도체는 약 95%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공급망 위기에 취약한 구조다. 실제 2021년 글로벌 반도체 부족 사태로 자동차 생산에 차질을 빚었고, 지난해에도 중국과 네덜란드 간 갈등으로 공급 불안이 재연됐다. 이에 국내 기업들이 개발부터 양산까지 협력하는 체계를 구축해 해외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취지다.
올해는 참여 규모부터 커졌다. 지난해 27개였던 참여 기업·기관은 53개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기존 삼성전자와 SK키파운드리를 비롯해 글로벌테크놀로지, 어보브반도체, LX세미콘, 동운아나텍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소프트웨어와 반도체 설계자산(IP), 패키징, 시험평가, 기능안전 분야 기업·기관까지 참여 범위를 확대했다.
행사에는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을 비롯해 한진만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 이동재 SK키파운드리 대표이사 등 기업 경영진과 정부·학계 관계자 약 90명이 참석했다.
이번 포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지난해 출범 이후 거둔 협력 성과다. 현대모비스는 국내 반도체 업체들과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총 19건의 공동 개발 과제를 발굴했다. 이 중 13종은 실제 개발을 시작했고, 9종은 현대차·기아에 적용할 양산 차종까지 선정했다. 단순한 기술 교류와 협력 논의를 넘어 현대차·기아의 실제 차량 탑재를 목표로 공동 개발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규석 사장은 “현대모비스는 차량용 반도체 수요 기업으로서, 그간 축적해 온 다양한 노하우를 적극 공유하겠다”면서 “차량용 반도체의 높은 진입장벽을 개별 기업이 홀로 감당하지 않도록, 각자의 장점을 연결하고 개발부터 검증과 양산까지 함께 책임지는 전 주기 협력 구조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는 산업통상부와 현대차, 현대모비스, LG전자가 주도하는 ‘차량용 반도체 원팀 태스크포스(TF)’도 출범했다. 개별 기업 간 협업을 넘어 정부와 주요 수요기업이 함께 국산화 과제를 발굴하고 기술 개발과 사업화를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올해부터는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자동차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무게를 둔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높은 온도와 진동 등 가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만큼 일반 전자제품보다 엄격한 품질과 신뢰성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 현대모비스는 개발 초기부터 완성차 업체가 요구하는 성능과 품질, 탑재 일정 등을 국내 반도체 기업들과 공유한다는 계획이다. 기업들이 실제 차량 적용 가능성을 확인한 상태에서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를 추진하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박철홍 현대모비스 반도체사업담당 전무는 “시스템과 제어기 관점에서 미래 핵심 반도체의 요구사항과 기술 로드맵을 선제적으로 제시하겠다”면서 “완성차와 함께 차량에 적용할 기능과 품질 기준, 적용 시점, 목표 차종 등을 조기에 구체화하고, 검증과 양산을 거쳐 실제 사업 성과로 이어지는 수요 기반 개발체계를 강화한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개발 협력은 시스템반도체와 전력반도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차량의 각종 장치를 제어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MCU)를 비롯해 통신·전원 관리용 반도체의 국산화를 추진한다. 수요기업과 설계업체, 생산업체, 시험·인증기관이 개발 단계별로 어떤 역할을 맡을지도 구체화할 예정이다.
전기차의 전력 효율을 좌우하는 전력반도체도 주요 협력 대상이다. 현대모비스는 탄화규소(SiC) 반도체와 IGBT 등의 개발·양산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정부·SK키파운드리와 협력해 국내 반도체 설계업체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시제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R&D) 환경을 마련할 계획이다.
현대모비스는 이 같은 협력체계에서 반도체 개발과 실제 차량 적용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완성차 업체에 주요 부품을 공급하는 1차 협력사이면서 반도체 자체 설계와 외부 전문기업과의 공동 개발을 모두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체 반도체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2020년 현대오트론으로부터 반도체 사업을 넘겨받은 이후 시스템반도체와 전력반도체를 중심으로 설계 역량을 키워왔다. 현재 전원과 구동, 통신, 센서, 데이터 처리 등에 사용하는 시스템반도체 16종을 직접 설계해 외부 파운드리에서 연간 약 2000만개 생산하고 있다.
전력반도체의 경우 반도체부터 파워모듈, 인버터, 모터, 전동화 구동시스템(PE시스템)으로 이어지는 개발 역량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개별 반도체의 성능뿐 아니라 이를 탑재하는 부품과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향후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와 자율주행 기술이 고도화되면 차량 내부에서 데이터를 처리하고 각종 장치를 제어하는 반도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현대모비스도 이미 개발된 반도체를 구매해 적용하는 방식에서 나아가 미래 차량의 기능과 구조를 먼저 고려한 뒤 필요한 반도체를 국내 기업과 함께 설계하는 방식을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뒷받침된다. 차량용 반도체의 품질과 신뢰성을 검증할 수 있는 천안 차량용 반도체 지원센터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조성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포럼에서 발굴한 협력 과제를 정부 연구개발(R&D) 사업과 연계하고, 별도 협의체를 통해 개발 일정과 진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할 방침이다.
이 사장은 “지난해 첫 포럼에서 국내 기업들이 보유한 가전·모바일·산업용 반도체 기술을 차량용으로 확장하고 공동 개발하는 기회를 발굴하는 데 집중했다면, 올해는 실제 제품 개발과 차량 적용, 사업화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한층 고도화된 단계로 진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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