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대륙아주 ‘노동·안전법제포럼’
김동욱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강연
개정 노조법에 AI 도입·인력 재배치 교섭 범위 논란
“배치전환·임금 조정도 못 하면 기업들 버틸 수 있겠나”
알고리즘 지휘·감독도 쟁점…원청 사용자성 확대 가능성
AI 활용 채용·평가 과정 법적 책임도 경고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AI 도입과 이에 따른 인력 재배치 등에 대한 교섭은 조만간 터질 수밖에 없는 문제 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섭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기업의 인력 운영 방식이 빠르게 바뀌면서 AI 도입과 이에 따른 고용조정이 어디까지 노사교섭의 대상이 되는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AI 도입 자체는 경영 판단에 해당하더라도, 인력 재배치나 임금 조정이 노사 갈등으로 이어질 경우 기업의 혁신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동욱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1일 서울 중구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열린 헤럴드경제·법무법인 대륙아주 공동주최 ‘중대재해예방 노동안전법제포럼’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중앙노동위원회 소송 총괄 변호사와 고용노동부 서기관, 법무법인 세종 노동그룹장 등을 역임한 노동법 전문가다.
김 교수가 특히 강조한 것은 지난 3월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란봉투법)에 따른 노사교섭 범위의 불확실성이다. 개정법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 등을 노동쟁의의 대상에 포함하면서 기업의 경영 판단과 근로자의 권리가 충돌할 가능성을 키웠다.
고용노동부의 해석을 AI 도입에 적용하면 도입 여부와 시기, 기술 선택 등 경영상 결정 자체는 원칙적으로 교섭 대상이 아니다. 반면 인력 감축이나 배치전환이 객관적으로 예상된다면 고용보장 등 근로조건의 변동 사항에 대해서는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러한 구분이 실제 현장에서 명확하게 적용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에도 근로조건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은 교섭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며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법원이 교섭 범위를 기존보다 넓게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현대차 생산현장에 피지컬 AI 로봇이 도입되는 상황을 예로 들며, 노조 반대에 따른 인력 조정의 어려움을 짚었다. 그는 “AI를 도입했는데도 인력 감축이나 배치전환, 임금 조정을 할 수 없다면 기업들이 이를 버텨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배치전환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알고리즘을 통한 업무 지시가 노동법상 지휘·명령에 해당하는지도 쟁점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AI가 기계적으로 내려주는 전자적 신호를 지휘·명령으로 볼 수 있느냐가 논쟁이 되고 있다”며 배달 플랫폼의 업무 배정, 택시·대리운전 플랫폼의 호출과 평점 관리 등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2024년 대법원의 타다 운전기사 근로자성 인정 판결을 소개하면서 “알고리즘을 통한 업무 지시도 실질적인 지휘·감독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스템 설계 단계부터 근로자에게 어느 정도의 재량권을 부여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원청기업의 사용자성 문제와도 연결된다. 노란봉투법은 근로계약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하는 지위에 있다면 그 범위에서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도록 했다. 원청이 AI 시스템으로 하청 근로자의 업무를 직접 배분하거나 평가 결과를 임금·인사에 반영할 경우 사용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AI를 활용한 채용과 인사평가에서도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가 과거 채용 데이터를 학습해 특정 성별에 불리한 결과를 낸다면 남녀고용평등법상 간접차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합격·불합격 등 중요한 결정을 전적으로 AI에 맡길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른 결정 거부권과 설명요구권도 쟁점이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채용에 활용하는 AI가 인공지능기본법상 ‘고영향 AI’에 해당하면 활용 사실 고지와 사람의 관리·감독 등 관련 의무를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AI가 과거 채용 데이터의 편향을 반영하거나 지원자의 역량을 잘못 평가할 수 있는 만큼, 인사담당자가 결과를 그대로 승인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사람이 형식적으로 결재만 한다면 사실상 AI가 최종 결정을 내린 것으로 판단돼 개인정보보호법상 문제가 될 소지도 있다.
김 교수는 AI 평가를 근거로 직원을 징계하거나 해고할 때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AI를 활용했다는 이유로 사용자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AI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청년 신규채용 감소를 주요 문제로 꼽았다. 전체 고용이 줄었다는 뚜렷한 증거는 아직 없지만,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은 위축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발표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AI 노출도가 높은 직군의 22~25세 신규 진입률은 2024년 기준 2022년보다 14% 감소했다. 국내에서도 주니어 인력의 고용은 줄고 시니어 인력은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경향이 관측됐다. AI가 청년층의 정형적·반복적 업무를 대체하는 반면 숙련 근로자의 경험과 판단 능력은 보완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신입 채용 축소가 장기적으로 숙련 인력 양성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기업들이 AI 시대에 맞춰 직무를 재설계하고 청년 인력의 교육·훈련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김 교수는 AI 확산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에 대비해 노동법과 제도의 개선 방향을 선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AI가 이미 우리 사회의 체제를 바꾸고 있고, 현행 노동법과 충돌하는 부분도 있다”며 “관련 갈등이 아직 법정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았을 뿐, 국회와 기업, 산업 현장에서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kwater@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