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펑 등 中 완성차, 유럽 배터리 공급사 물색
EU 현지 조달 강화 추진
2032년까지 배터리 부족 전망
美 ESS ‘탈중국’ 확산…내년 수요 29% 증가
SK온, 유럽 47.5GWh 생산·美 ESS 9GWh 수주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유럽 전기차 시장과 북미 에너지저장장치(ESS) 업계에 탈(脫)중국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한국 배터리 업체들의 해외 실적 개선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현지 배터리 공급사를 찾고, 미국에서는 중국계 에너지저장장치(ESS) 업체들의 철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공급망이 속도감 있게 재편되면서 한국 배터리 업체들에 신규 수주 기회가 열리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전기차 업체 샤오펑은 유럽 생산 확대에 맞춰 현지 배터리 공급사를 물색하고 있다. 정예칭 샤오펑 부사장은 지난 12일 파리모터쇼에서 “현지 공급망 구축을 진행 중”이라며 “자사가 요구하는 충전 성능과 에너지 밀도를 충족하는 현지 배터리 공급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샤오펑은 현재 오스트리아 마그나 공장에서 전기차를 위탁 생산하고 있으며, 추가 생산시설 확보를 위해 공장 인수나 유럽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을 검토하고 있다. 창안자동차도 내년 중반 현지 생산을 목표로 유럽 업체와 협의를 진행 중이다. 체리는 스페인 옛 닛산 공장을 활용하고, BYD는 올해 4분기 헝가리에서 차량 조립을 시작해 2028년까지 유럽 판매용 전기차를 모두 현지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중국 완성차의 현지화는 유럽연합(EU)의 규제 강화와 맞물려 있다. EU는 산업가속화법(IAA)을 통해 전기차·배터리의 역내 생산과 조달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앞서 지난 16일 독일과 프랑스도 현지 생산 우대 방안을 발표했다.
중국 업체들이 유럽에서 차량을 조립하더라도 배터리까지 현지 조달하려면 새로운 공급사가 필요할 수 있다. EU와 중국이 중국산 하이브리드차 수출 제한에 합의한 점도 변수다. 기존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판매를 늘리면 이들에게 납품하는 한국 배터리 업체들도 간접적인 수혜를 볼 수 있다.
유럽 배터리 공급 부족 전망…K배터리 현지 생산 강점
유럽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도 배터리 수요를 키우고 있다. 대신증권은 내년 유럽 순수전기차(BEV) 판매량이 올해보다 20% 증가한 423만대, 차량용 배터리 수요는 16% 늘어난 326GWh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현지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가 의뢰한 분석에 따르면 역내 조달 규제가 시행될 경우 배터리 공급 부족이 2032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점쳐진다. EU의 셀 생산량이 지난해 90GWh에서 2032년 306GWh로 늘어나더라도 역내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유럽에 생산시설을 선제적으로 구축한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 신규 수주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국내 배터리 3사의 유럽 내 생산능력은 약 174GWh로, LG에너지솔루션이 폴란드에 86GWh, SK온이 헝가리에 47.5GWh, 삼성SDI가 헝가리에 약 40GWh를 확보했다. 중국 업체들의 신규 공장 상당수가 건설·초기 가동 단계인 만큼 축적된 양산 경험도 강점이다.
기술력도 경쟁 요소다. SK온은 니켈 함량 약 90%의 NCM9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으며, SF 배터리는 잔량 10%에서 80%까지 약 18분 만에 충전할 수 있다. 헝가리 코마롬 제1·2공장과 이반차 공장을 운영 중인 SK온은 지난 6일 이반차 공장에서 포드의 최고 등급 품질 인증인 ‘Q1 어워드’도 받았다.
美 ESS ‘탈중국’…국내 업체 대체 공급 기회
미국에서는 중국산 배터리 의존도를 줄이는 규제가 중국 업체들의 사업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CATL과 EVE에너지, 하이티움 등 중국 주요 ESS 업체들이 미국의 대중국 규제와 중국의 기술·인력 수출 통제 등으로 현지 사업에서 사실상 대부분 철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투자세액공제와 연계한 비(非)금지외국기업(Non-PFE) 조달 요건도 강화하고 있다. ESS 설비에 적용되는 관련 조달 비율 기준은 올해 55%에서 2030년 75%로 높아질 예정이다. 중국계 공급망을 대체할 배터리 업체들의 공급 기회가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미국 내 ESS 사업자들에게는 배터리 공급사의 생산지역뿐 아니라 지분구조와 부품 조달 경로까지 따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시장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대신증권은 내년 미국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 설치 수요가 올해보다 28.7% 늘어난 80.6GWh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연계 수요는 올해 1.9GWh에서 내년 12.1GWh로 6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SK온은 지난 8월 미국 ESS 업체 네오볼타 파워와 9GWh 규모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셀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2027~2031년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공급하고, 추가 9GWh 규모의 협력도 추진한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의 지난 9월 기준 수주잔고는 각각 약 150GWh, 80~100GWh로, 북미 현지 생산능력의 2년 치를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CATL은 헝가리에 100GWh 규모의 공장을 구축하고 스페인에서도 합작공장을 추진 중이다. 이현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업체들이 당분간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2030년 이후에는 경쟁구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도 중국의 올해 1~3분기 리튬배터리 수출이 전년보다 36% 증가했다며 “대미 수출 감소했으나 미국 외 지역 수출 증가가 대미 물량 감소분을 상쇄했다”고 분석했다.
kwater@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