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택연금 중인 수치에 책·서한 전달
미얀마 정부, 면담사진 공개하며 홍보
5년 넘게 구금된 수치 처우개선 부각
내달 아세안 정상회의 앞두고 관계복원 시도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가택연금 중인 아웅산 수치(81) 미얀마 국가고문에게 책 2권과 서한을 보냈다. 미얀마 정부는 수치 고문의 최근 모습과 함께 물품 전달 사실을 공개했다. 2021년 군사쿠데타 이후 5년 넘게 구금된 수치 고문의 처우가 개선됐다는 점을 부각해 국제사회의 비판을 완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20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미얀마 대통령실은 전날 내무부 관계자들이 수도 네피도에 있는 수치 고문의 가택연금 장소를 방문해 찰스 3세가 보낸 책과 서한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관계자들은 수치 고문과 약 10분간 면담했다.
찰스 3세가 보낸 책은 건강한 토양과 음식의 관계를 다룬 ‘더 랜드 가드너스: 소일 투 테이블(The Land Gardeners: Soil to Table)’과 런던에서 열린 환경 전시회 도록인 ‘소일: 더 월드 앳 아워 피트(Soil: The World at Our Feet)’ 등 2권이다.
찰스 3세가 직접 작성한 서한도 밀봉된 상태로 전달됐다. 서한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찰스 3세는 평소 정원 가꾸기와 환경보호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왕세자 시절인 2017년에는 런던에서 수치 고문과 만난 인연도 있다.
영국과 수치 고문의 관계도 각별하다. 영국은 과거 미얀마를 식민 지배했던 국가이며, 수치 고문은 영국 유학 시절 영국인 남편과 만나 결혼했다. 현재도 가족들이 영국에 거주하고 있다.
미얀마 정부는 물품 전달 사실과 함께 수치 고문의 최근 모습이 담긴 사진 2장도 공개했다. 사진에는 전통의상을 입은 수치 고문이 내무부 관계자로 보이는 남성 2명과 마주 앉아 대화하는 모습이 담겼다.
수치 고문의 근황이 공개된 것은 지난 8월 초 아르노 드 베크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미얀마 상주대표가 그를 면담한 이후 약 2개월 만이다.
특히 미얀마 당국은 이번 발표에서 수치 고문을 처음으로 ‘특별 여성 수감자’라고 지칭했다. AFP는 이 같은 표현 변화에도 주목했다.
미얀마 정부가 수치 고문의 근황을 공개한 배경에는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치 고문은 2021년 2월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5년 넘게 구금돼 있다.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무너뜨리고 수치 고문을 구금했으며,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인권 탄압과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비판을 받아왔다.
올해 들어 미얀마 정권은 군사정부에서 민간정부로 체제를 전환하며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군사정권 수장이었던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지난 4월 민간인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군부 지도자가 권력의 중심에 남아 있는 만큼 실질적인 민주화가 이뤄졌는지를 둘러싼 의문은 여전하다.
미얀마 정권은 특히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의 관계 정상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다음 달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미얀마의 아세안 복귀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세안은 2021년 미얀마 군사쿠데타 이후 폭력 즉각 중단과 당사자 간 대화 등을 포함한 5개 항목에 합의했다. 그러나 미얀마 군정이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자 군정 지도부의 아세안 공식회의 참석을 제한해왔다.
미얀마 정부가 찰스 3세의 선물 전달 장면을 공개한 것도 수치 고문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전달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다만 이번 조치가 수치 고문의 석방이나 정치적 자유 회복으로 이어질지는 불분명하다. 수치 고문은 여전히 당국의 통제 아래 있으며 외부와의 접촉도 제한된 상태다.
sj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