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빈 “AI 위험, 핵무기처럼 미중 협력해야”
“자본 수익 늘고 노동 소득 감소 가능성”
AI 투자 거품 붕괴 가능성은 낮게 평가
“금융위험보다 AI 안전 문제가 더 우려”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이 인공지능(AI) 발전으로 지식노동자의 대규모 실업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AI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노동소득을 줄이고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AI를 둘러싼 미중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위험을 관리했던 것처럼 양국이 AI 안전 문제에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일(현지시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중국 경제매체 제일재경 등에 따르면 루빈 전 장관은 전날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행사에 화상으로 참석해 AI가 세계 경제와 고용시장에 미칠 영향을 이같이 진단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재무장관을 지낸 루빈 전 장관은 베이징대 국가발전연구원 황이핑 원장과의 대담에서 ”AI가 경제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매우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그는 AI가 생산성을 대폭 높일 수 있지만 대규모 구조적 실업을 초래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식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AI 도입으로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더라도 그 성과가 노동자에게 고르게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AI가 인간의 업무를 대체하면서 자본에 돌아가는 수익은 늘어나는 반면 노동에 대한 보상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득 불평등을 넘어 정부 재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소득에 적용되는 세율이 자본소득보다 높기 때문에 노동소득의 비중이 줄어들면 정부의 세수 기반도 약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루빈 전 장관은 AI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략무기제한협정(SALT)과 핵 문제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불신과 상호 적대를 제쳐두고 양국에 거대하고 강력하며 부정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에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군사적으로 대립하면서도 핵전쟁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군비통제 협상에 나섰던 것처럼 AI 안전 문제에서도 미중 간 협력 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특히 AI를 활용한 사이버공격 가능성을 경고했다. AI 기술이 오픈소스 방식으로 확산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첨단 기술에 접근할 수 있게 된 데다 범용인공지능(AGI)을 향한 기술 발전이 이어지면서 잠재적 위험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중은 AI 기술 패권을 놓고 경쟁하면서도 안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대화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지난달 회담에서 AI 대화 채널 구축에 합의했으며 다음 달 두 번째 대화를 앞두고 있다.
다만 AI 규제를 둘러싼 양국 정상의 입장에는 차이가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4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중은 모두 AI 대국으로 AI를 잘 발전시키고 규제할 능력과 책임이 있다”며 AI 발전이 인간의 통제 아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같은 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AI 규제 문제를 현 상태로 유지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에도 미국이 AI 분야에서 크게 앞서고 있다는 점을 들어 양국의 규제 체계를 통합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셰펑 주미 중국대사도 이달 뉴스위크 인터뷰에서 “미중은 모두 AI 대국으로 특별한 책임을 진다”며 군비 경쟁이나 기술적 장벽을 세우는 대신 AI에 대한 안전장치와 제동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루빈 전 장관은 최근 AI 기업으로 막대한 투자금이 몰리면서 제기되는 거품 붕괴 우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AI 투자와 대출이 확대되면서 금융시스템에 위험이 누적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실제 거품 붕괴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루빈 전 장관은 ”AI 관련 대출에 상당한 위험 노출이 있지만 붕괴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미국 금융시스템의 양호한 건전성과 대형 은행들의 충분한 자본을 꼽았다. AI 기업에 자금을 공급한 대형 은행들은 손실을 감당할 자본 여력이 있는 반면 지역 은행들은 AI 관련 대출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AI가 가져올 수 있는 금융 위험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AI의 안전 문제“라고 강조했다.
sj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