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금리상승기 대비 상품 검토
대출차주 이자상환 부담 경감 취지에도
“조달비용에 수요 불투명” 은행권 반대
은행서 발행한 ‘10년 만기 커버드본드’
주금공 매입 프로그램 대안 여부 주목
#직장인 A씨는 최근 은행으로부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이번 달부터 조정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난 4월 3억원을 연 4.7%의 6개월 변동금리로 빌렸는데,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적용 금리가 연 5.32%로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A씨의 월 원리금 상환액은 약 155만6000원에서 167만1000원으로 11만5000원가량 늘었다. A씨는 차라리 금리 조정에 따른 이자 부담에 장기간 금리를 고정할 방법이 없는지 은행에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사실상 5년이 최대라는 것이었다.
금융당국이 금리상승기 대출 차주의 이자 상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장기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도입을 검토했지만, 좀처럼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10년 이상의 초장기물의 경우 조달에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반면, 금리가 높아 수요는 없을 것이라는 은행의 반대 때문이다. 금융권에선 연내 도입도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장기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활성화를 목표로 세우고 현재 은행권과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9월 가계부채 점검회의에서도 금융당국은 장기 고정금리 상품 출시를 유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장기고정금리 주담대는 금리가 10년 이상 고정되는 상품을 말한다. 만기가 30~40년을 넘어서는 ‘초장기 주담대’와는 다른 상품이다. 현재 주요 은행에선 5년간 금리가 고정된 후 변동하는 은행채 5년물 준거금리 상품을 ‘고정형’으로 판매하고 있다. 변동형은 금융채 6개월물이나 신규코픽스를 준거금리로 삼는다. 현재 주요 은행 중에선 신한은행만 10년물 장기고정금리 주담대를 판매 중이다.
장기고정금리 주담대는 금융당국의 숙원 과제 중 하나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2024년말 기준 90.5%로 세계 5위 수준이다. 금리 상승 사이클을 맞을 때마다 건전성 리스크가 불거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가계 가처분소득 감소로 이어져 경제 흐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금리 상승 리스크를 장기간 ‘헷지’해보겠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취지다.
올해 역시 시장금리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장기고정형 상품 도입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의 준거금리가 되는 신규코픽스의 경우 6개월 만에 0.62%포인트가 올라, 반년 전 고정금리를 받았을 경우보다 더 많은 이자를 내게 된 상황도 나타나게 됐다.
지난 16일 기준 은행권의 고정형 대출 금리 상단은 연 7.02%였는데, 변동형 역시 연 6.74%로 7%를 목전에 두고 있다.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추가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열어두고 있어 대출 차주의 이자 부담은 더 가중될 전망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고정금리로 주담대를 받은 사람의 금리를 변동시키면 과거 이자의 2.5배를 내야 할 상황도 온다”고 언급한 점도 이같은 금리 상승 리스크를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장기고정금리 상품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정작 활성화 논의는 답보 상태다. 은행권이 상품 출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가계부채 점검회의에서도 복수의 은행이 반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권이 가장 큰 걸림돌로 꼽는 것은 수요다. 장기고정금리 상품은 장기자금 조달 비용이 반영돼 현재 판매 중인 상품보다 금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과연 소비자들이 이를 선택하겠느냐는 것이다.
통상 은행들은 은행채와 예금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대출 등 상품을 운용한다. 만기와 조달 시기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기본적인 업무 시스템상, 10년 만기 주담대를 판매하기 위해선 먼저 은행채 10년물을 발행해야 한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전날 기준 은행채 5년물은 연 4.339%, 10년물은 연 4.637%로 0.3%포인트가량 차이가 난다. 원가가 높아진 만큼, 소매가인 실제 판매 금액은 이보다 더 간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변동형 대출의 원가인 신규코픽스는 현재 3.43%다.
문제는 5년물조차 금리가 높다는 이유로 수요가 적다는 점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중 고정금리 비중은 지난 7월 31.9%로 집계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아무리 상품이 좋아도 대출차주가 선택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굳이 내놓을 필요가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장기고정금리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역마진도 불가피하다는 게 은행의 입장이다. 대출을 취급하기 위해선 웃돈을 주고 10년 만기의 자금을 먼저 끌어와야 하는데, 막상 상품이 판매되지 않으면 그에 대한 운용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소비자는 대출 3년 후 중도상환수수료가 면제되는 시점에서 갈아탈 수 있지만 은행은 빌려온 자금을 처리할 방도가 없다”며 “고객은 금리 상승 부담을 헷지할 수 있지만 은행은 고스란히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장기고정금리의 경우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낮아진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대표적인 가계부채 규제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우회로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금융당국은 장기고정금리 활성화를 위해 지난 2024년 ‘커버드본드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주담대 채권을 담보로 발행하는 채권을 말한다. 은행채보다 조달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특징이 있다. 금융당국은 활성화 방안을 통해 10년 이상 커버드본드 잔액에 대해 추가 한도를 부여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제시했으나 은행들의 유인을 만들기엔 역부족이었다.
모 당국 관계자는 “커버드본드를 발행하려면 은행이 먼저 일정 규모 이상의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해야 한다”며 “익숙한 업무가 아닌 데다 고객 수요도 담보하기 어려워 은행들이 소극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현재 은행권의 출시 유인을 높이기 위해 추가 인센티브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전반적인 방안은 은행권과 협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나올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선 연내 출시는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제도적 여건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 않은 상황”이라며 “당장 출시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협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금융당국은 은행이 발행한 10년 만기 커버드본드 등을 주택금융공사가 매입하는 ‘커버드본드 재유동화 프로그램’ 도입을 준비 중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은행 입장에서는 자금 조달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장기고정금리 상품에 대한 전체적인 총량을 정해두거나, 유동화 등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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