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세아, 작가 14인 대표작 20점 전시
초현실주의·추상·포스트모더니즘 조망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푸른 천상의 물고기 위로 예수가 있는 벽시계가 있고, 모자상과 야곱의 사다리가 보인다. 지상에는 붉은 장미와 양, 초록 잎과 노란 미모사 꽃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그 앞에는 과일과 촛대가 놓인 식탁이 배치돼 있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마르크 샤갈의 ‘방스 주변’(1955~1957)이다.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는 내년 1월 9일까지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현대 미술의 흐름을 조망하는 ‘현대회화 하이라이트: 시대의 초상’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세기 초부터 동시대까지 국제 현대 미술의 주요 흐름을 대표하는 작가 14명의 대표작 20점을 통해 현대 미술이 시대의 변화와 치열하게 조응하면서 일궈 온 ‘시대적 초상’을 보여준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쿠사마 야요이와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박미화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2027년 제1회 세종한글비엔날레 예술감독)는 “현대 미술의 가장 큰 숙제는 ‘우리가 뭘 볼 것인가’와 ‘어떻게 그릴 것인가’ 등 두 가지였다”며 “20세기 들어 창조의 자유와 미술의 자율성이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19세기 미술과 달라졌다”고 말했다.
전시는 세 파트로 구성된다. 먼저 ‘꿈의 산책’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세계에서 이성중심주의와 합리주의를 비판하고, 보다 근원적인 무의식과 꿈의 세계로 눈을 돌린 초현실주의를 선보인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거장 마르크 샤갈은 입체주의적인 형태 해석과 서정적인 색채를 결합해 독자적인 화풍을 완성했다. 작가의 중후기 남프랑스 시절을 대표하는 작품 ‘방스 주변’은 꿈속의 풍경 같은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유대교적 신비주의 종교인 ‘하시디즘’의 범신론적 성향과 상징주의에 영향을 받아 독특한 작품을 남겼다.
벨기에의 초현질주의 작가 폴 델보는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정교하고 고전적인 필치로 묘사했다. ‘밤의 미녀들(저녁의 희극)’(1936), ‘잠든 도시’(1938), ‘크리스마스의 밤’(1956) 등에서 그는 기하학적 원근법, 깊게 드리운 그림자, 고대 그리스풍 건물 등과 몽환적인 여인을 결합한다. 신고전주의 형식을 차용하면서 새로운 초현실적 세계를 구축해 ‘아카데미즘의 초현실화’ 작가로 평가받는다.
두 번째 파트 ‘난해한 추상’에서는 계몽주의와 이성에서 비롯된 20세기 모더니즘 추상의 유산과 현대적 변주를 소개한다.
네덜란드의 추상표현주의 거장 윌렘 드 쿠닝이 말년에 그린 ‘무제 XIX’(1984)는 알츠하이머로 인한 신체적 제약 속에서도 부단한 열정을 통해 성취한 자유로운 추상 형태를 보여준다.
쿠사마 야요이는 아버지의 외도와 어머니의 집착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대는 트라우마를 남겼고, 어느 날 그는 식탁보의 꽃무늬가 점점 번져 나가 물방울로 변해 자신까지 잠식하는 환시를 보게 된다. 쿠사마는 이러한 환시를 그림으로 그려 자신의 공포를 극복하고자 했다.
‘인피니티 도트(AB)’(2003)는 물방울이 증식하는 환영을 표현한 작품이다. 뉴욕 시절 초기는 단색이나 어두운 톤으로 강박증과 불안을 표현했다면, 이 시기에는 강렬한 원색을 과감하게 사용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여준다. ‘실버 인피니티 네트’(2014)는 작가가 정사각형의 대형 그림을 그리던 시기의 작품으로, 은색 안료가 조명의 각도와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빛을 다르게 반사한다.
린 드렉슬러, 마리나 페레즈 시마오의 작품에선 색채와 선, 면, 반복되는 패턴과 기하학적 구조를 사용한 다채로운 조형 언어를 볼 수 있다.
마지막 ‘형상의 부활’은 모더니즘이 순수한 평면성으로 환원하면서 현실을 모두 지워버리자 답답함을 느낀 작가들이 서사와 역사, 일상적 풍경과 개인의 경험을 다시 전면에 내세운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을 소개한다.
영국 요크셔의 산업 도시 브래드퍼드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호크니는 매연과 석탄 연기로 가득 찬 환경 속에서 맑고 깨끗한 자연을 동경했다. 그는 회화, 판화, 사진, 디지털 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자신이 보는 세계를 평면 위에 생동감 있게 재현하는 것에 골몰했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작업한 그가 고향으로 돌아와 그린 ‘더 많은 월드게이트 통나무, 2009년 10월 13일‘(2009)는 요크셔의 시골길에서 그린 풍경화이다. 근경의 통나무와 길의 급격한 원근에도 불구하고 붉은색과 초록색의 강한 보색 대비로 화면은 현대적인 감각을 선사한다.
살보의 ‘프리마베라’(1997)는 계절의 순환과 빛, 색채를 통한 생명의 회복을 상징하는 대표 연작 중 하나이다. 니콜라스 파티의 ’풍경’(2016)은 파스텔을 손끝으로 문질러 완성한 몽환적인 질감의 작품으로, 초현실적인 낙원이나 동화 속 풍경 같은 인상을 준다.
조지 콘도의 ‘경영진들과 그들의 아내들’(2011)은 서양미술사에 대한 해석과 현대 자본주의의 사회적 맥락을 지적한다. 아드리안 게니는 ‘담배를 피우는 자화상’(2015)에서 이목구비가 뭉개진 얼굴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표현했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작품들을 작가의 생애와 사회적 환경과 함께 조명해 관람의 재미를 더한다. 시간 여행을 하듯 현대 미술 거장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20세기부터 현재까지 세계의 변화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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