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끝자락부터 잿빛으로 바뀌고 있다. 발밑 낙엽은 바스락 부서진다. 시리도록 파랬던 하늘이 부풀렸던 기대도 스산한 가을바람에 쓸려가고 있다.

집권 세력엔 ‘불만의 가을’이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자중지란의 여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배신 프레임에 갇혀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까지 민주당 강경파의 요구가 관철되는 걸 지켜봤다. 초대 중대범죄수사청장 인선을 두고도 친윤(친윤석열) 검사라는 의혹을 덜어내는 데 공력을 꽤 들였다.

실용을 앞세운 이 대통령에게 국민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랩소디 같은 국정 운영을 기대했다. 하지만 음(音) 하나 내는 데도 강경 지지층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였다.

좌우로 나뉜 ‘혐오의 시대’에 정치 기반이 취약한 이 대통령은 애초 ‘위기의 남자’였다. 그림자도 파랑임을 입증하라는 수준의 당 안팎 세력 앞에 성과 중심론은 파열음을 냈다.

그의 지지층엔 ‘불안의 가을’이다. 진보가 권력을 잡아도 혼란하긴 매한가지라는 인식을 심을 악재가 잇따른다. 민주당 대표 출신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소방 재정 빨대’ 발언도, 삼권분립을 흔들 대법원장 탄핵 추진 행보도 위태위태하다. 한국갤럽의 2년 뒤 총선 기대 조사를 보면 민주당의 다수 당선을 바라는 비율은 34%다. 야권 다수 당선 기대(47%)에 크게 뒤진다.

이 대통령을 진보 진영 내 역학관계의 피해자로만 볼 순 없다. 실용보다 지지율에 신경 쓰는 흔적이 적지 않다. 8월 말께만 해도 추진 분위기였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 보류가 그렇다. 그는 지난 19일 기자들과 만나 “반발을 억압해 가면서 할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 CPTPP로 피해를 볼 농림축수산업계를 의식한 것이다.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며 진행한 설익은 농지조사로 농심(農心)이 들끓자 방향을 튼 셈이다. CPTPP 가입이 늦어질수록 한국의 핵심 산업 경쟁력이 약화할 거란 분석은 힘을 잃었다.

태양이 작열하던 8월 중순, 이 대통령은 “존재 자체가 싫을 때 그렇게 표현한다”고 말했다. 세제개편안 가운데 부동산 증세 등이 비난받자 “앞으로 가도 잘못, 뒤로 가도 잘못, 뭐 어쩌라는 거냐”면서다. 정책 비판에 대한 피로감이 묻어 있다. 23년 전 “대통령 못 해 먹겠다”고 말해 충격을 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어와 일견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인기보단 국익을 위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뒤 지지층의 반발에 부딪혀 토로한 좌절감이었기에 둘을 등치할 순 없다.

그래서 최고권력자의 모든 고충을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려는 고뇌로 포장하긴 어렵다. 이 대통령은 반도체 메가특구에 필요한 원전 건설, 주52시간 노동규제 완화를 사회적 합의에 맡겼다. 스스로 전격전을 선언하더니, 중요 결정 앞에서 관찰자로 물러선 꼴이다. 토론을 중요시하는 것과 결정을 미루는 건 다른 차원이고, 이러면 실용은 구호에 그칠 수 있다.

작년 5월 장대비 쏟아지던 전남 순천을 기억한다.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는 당선되면 국민의 근심은 최소화되게 만들겠다며 큰절했다. 백 마디 말보다 울림이 있었다. 그는 통합을 외치면서도 좌파도 우아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의 ‘좌아하게’란 단어를 SNS에 썼다. 그 생경한 조어는 누구에게 가 닿았을까. 눈물인 듯 빗물을 훔치던 순천의 근심은 또 어떻게 됐을까.

홍성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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