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골라도 결제액 0원, 배송도 없어
실제 구매 없이 쇼핑 과정만 즐기는 앱
고물가·주거비 부담에 소비 피로 커져
절약에 도움될까, 쇼핑 충동 키울까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명품 가방부터 고급 시계, 슈퍼카까지 마음껏 장바구니에 담는다. 원하는 상품을 고르고 결제 버튼까지 누르지만 실제로 빠져나가는 돈은 단 한 푼도 없다. 주문을 마친 뒤 배송 알림까지 받을 수 있지만 집 앞에 도착하는 택배는 없다.
미국에서 실제 돈을 쓰지 않고 쇼핑하는 기분만 즐기는 이른바 ‘가짜 쇼핑’ 서비스가 새로운 소비문화로 주목받고 있다. 물가 상승과 주거비 부담으로 지갑을 열기 어려워진 소비자들이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 쇼핑 과정에서 얻는 만족감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14일(현지시간) 미국 경제매체 마켓워치는 가짜 쇼핑 서비스와 이색 금융 애플리케이션(앱)의 등장을 소개하며 최근 미국인들의 경제적 불안이 새로운 금융·소비 서비스에 반영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실제 구매를 하지 않고도 쇼핑을 경험할 수 있는 서비스다. 가짜 쇼핑 사이트 ‘페이크홀(FakeHaul)’에서는 온라인 쇼핑몰처럼 상품을 둘러보고 장바구니에 담은 뒤 주문을 완료하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상품을 선택하고 결제 단계까지 진행한다는 점에서는 일반 쇼핑몰과 비슷하다. 하지만 실제 결제는 이뤄지지 않고 물건도 배송되지 않는다. 소비자는 돈을 쓰지 않으면서도 상품을 고르고 구매를 결정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다.
비슷한 방식의 앱인 ‘포홀(Faux Haul)’도 있다. 이용자는 가방과 의류, 신발, 시계, 보석뿐 아니라 슈퍼카와 요트 등 고가 상품을 가상으로 구매할 수 있다.
앱 안에서는 매일 가상 잔액이 충전된다.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골라 색상과 크기를 선택하고 주소를 입력한 뒤 결제 버튼을 누르면 주문이 완료된 것처럼 표시된다. 배송 상황을 알려주는 알림도 제공하지만 실제 상품은 도착하지 않는다.
가상 상품을 사고팔거나 가격 변동을 확인하는 기능도 있다. 다만 앱 안의 상품과 화폐는 모두 가상으로 설정돼 있어 실제 현금으로 바꿀 수 없다.
이 같은 서비스의 특징은 소비자가 물건 자체보다 쇼핑이라는 행위에서 얻는 즐거움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을 검색하고 비교하거나 장바구니를 채우는 과정만으로도 일정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색 서비스가 등장한 배경에는 미국 소비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자리하고 있다.
마켓워치는 올해 미국에서 끈질긴 인플레이션과 둔화한 임금 상승, 높은 주택 구입 장벽이 소비자들의 피로감을 키웠다고 짚었다. 돈을 모아도 원하는 생활 수준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기존의 저축과 소비 방식에 대한 회의감도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미시간대가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심리지수 조사에서도 올해 미국인들의 경제 상황과 개인 재정에 대한 평가가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경제적 비관론이 두드러진다. 미국 싱크탱크 어번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18~29세 응답자의 약 3분의 2는 자신들의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더 어려운 경제적 여건에 놓여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소비 여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가짜 쇼핑은 돈을 쓰지 않고 소비 욕구를 해소하려는 새로운 시도로 등장한 셈이다.
다만 가짜 쇼핑이 실제로 충동구매를 줄이는 데 효과적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결제 부담 없이 쇼핑을 즐기는 방식이 절약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상품을 계속 둘러보고 구매를 반복하는 행동 자체가 오히려 소비 욕구를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쇼핑을 멈추는 대신 돈이 들지 않는 쇼핑을 선택하는 현상은 미국 소비자들의 달라진 경제적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sj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