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보험협회 ‘사이버 리스크와 보험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전문가 83.6% “기업 보험 가입, 사이버 위험에 못 미쳐”
89.4% “대형 사고는 정부·민간이 공동 분담해야”
[헤럴드경제=정호원 기자] 국내 사이버보험 시장을 키우려면 정부와 민간이 먼저 협력해야 할 분야는 ‘사이버 사고 데이터의 수집·공유 체계 구축’이라고 전문가들은 꼽았다. 사고와 손해 데이터가 쌓이지 않아 보험사가 위험을 평가하고 보험료를 산정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진단이다.
사이버보험은 해킹이나 랜섬웨어 공격, 개인정보 유출 같은 사이버 사고로 기업이 입은 손해를 보상하는 보험이다. 고객 정보가 유출됐을 때 물어줘야 하는 손해배상금은 물론, 시스템 복구 비용과 영업이 멈춘 기간의 손실 등도 보장 대상이 될 수 있다.
헤럴드경제가 17일 입수한 화재보험협회의 ‘사이버 리스크와 보험 실태조사 결과보고’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공공-민간 협력(PPP)이 우선 필요한 분야로 ‘사이버 사고 관련 데이터의 수집 및 공유 체계 구축’을 1위로 꼽았다. 이어 ▷표준화된 사이버 리스크 평가모델 개발 ▷대규모 사이버 사고에 대한 공공 재보험·위험분담 체계 마련 ▷표준약관 제정 및 보장범위 명확화 순이었다.
데이터 부족은 시장 성장의 걸림돌을 묻는 여러 항목에서도 반복해서 지목됐다. 사이버보험 시장의 성장 제약요인으로는 경영진의 낮은 위험 인식에 이어 ‘사고·손실 데이터 부족’이 꼽혔다. 시장 활성화의 최대 장애 요인을 묻는 질문에서도 ‘시장 규모·수익성에 대한 불확실성’ 다음으로 ‘사고·손해 데이터 부재’가 많이 언급됐다. 해외 시장과 비교해 우선 갖춰야 할 공급 기반으로는 ‘사이버 위험 평가를 위한 데이터·모델 전문기관’이 1위를 차지했다.
민간보험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대형 사이버 위험에는 정부가 함께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응답자의 89.4%는 국가 배후 사이버 공격이나 기반시설 마비처럼 민간보험만으로 보장하기 어려운 위험을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분담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가 배후 공격으로 발생한 손해의 처리 방식에서도 ‘민간보험과 정부의 공동 위험분담’이 가장 많이 꼽혔다. 중소기업의 사이버보험 가입을 돕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에도 응답자 대다수가 동의했다.
국내 기업의 사이버보험 가입 수준은 사이버 위험에 비해 낮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응답자의 83.6%는 기업의 사이버보험 가입 수준이 직면한 위험에 못 미친다고 답했다. 국내 시장이 법적 의무보험에 의존하고 있다는 평가도 82.7%에 달했다. 의무가입 외에 기업이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 가입하는 수요는 아직 미미하다는 의미다.
시장 성장의 주요 제약요인으로는 ‘경영진의 낮은 사이버 위험 인식’이 66.4%로 가장 많이 꼽혔다. ‘보험료 부담’은 10.0%였다. 비용보다 경영진이 사이버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점이 더 큰 문제라는 분석이다.
기업 내부의 위험관리 체계도 한계로 지적됐다. 응답자의 82.3%는 사이버 위험관리가 IT 부서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91.7%는 사이버 위험을 재무 손실과 법적 책임, 영업중단 등을 아우르는 전사적 위험관리(ERM)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답했다. 사이버 위험을 기술 부서의 보안 과제에만 맡기지 말고 경영진이 직접 챙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험 공급 측면에서는 응답자의 94.1%가 사이버보험 약관과 위험평가모델의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보장 범위가 불명확하고 객관적인 위험평가 기준이 부족한 점이 시장 성장의 걸림돌이라는 판단이다. 사이버보험이 사고 뒤 손해를 보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전 위험진단과 사고 예방까지 지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의견도 다수를 차지했다.
곽훈 화재보험협회 신사업전략팀장은 “사이버보험도 사이버보안과 같이 연계해서 검토해야 하는데 이게 따로따로 놀고 있다”며 보험과 보안을 연계한 위험관리가 앞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실시됐다. 화재보험협회는 지난 8월 3일부터 21일까지 보험·재보험, 사이버보안, 금융기관, 학계 등 관련 분야 전문가 11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조사 결과는 일반보험 플랫폼 ‘BRIDGE’와 웹진 등을 통해 공유하고, 보험업계와 함께 사이버 위험평가체계 표준화와 보험 활용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실태조사도 매년 이어가 시장 변화와 주요 현안을 살피고 정책·제도 개선과제를 발굴하는 데 활용할 예정이다.
won@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