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일본 도쿄 도심의 고급 초고층 아파트인 이른바 ‘타워맨션’이 무허가 숙박업소로 이용되는 정황이 잇따라 드러났다. 중국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관광객을 모집하고 별도의 메신저로 예약과 결제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일부 객실은 1박에 10만엔이 넘는 고급 호텔 수준의 요금을 요구하고 있다.
15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도쿄 미나토구의 고급 타워맨션 여러 곳에서 무허가 민박 영업이 의심되는 사례가 확인됐다. 해당 건물들은 일반 주거시설로 등록돼 있으며 일부는 관리 규약을 통해 단기 숙박 영업을 금지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로 숙박시설 수요가 커지면서 도심 고급 아파트를 단기 임대해 수익을 올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38층 객실 ‘3박 38만엔’…중국 SNS에 숙박객 모집
도쿄 미나토구의 45층짜리 타워맨션 38층 객실은 최근 중국 SNS 샤오훙수에 단기 숙박시설로 등장했다.
게시물에는 약 80㎡ 면적에 방 3개를 갖춘 객실 내부 사진과 함께 전망이 좋고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3분 거리라는 설명이 담겼다. 주변에 편의점과 슈퍼마켓 등이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닛케이 취재진이 게시자에게 연락하자 처음에는 1박에 9만엔을 제시했다. 대화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숙박료는 12만엔으로 올랐다.
최소 숙박기간은 3박이었다. 여기에 별도의 청소비 2만엔이 붙으면서 최종 제시된 금액은 38만엔, 한화 약 320만원에 달했다.
취재진이 부동산 등기부를 확인한 결과 해당 객실의 소유주는 도쿄 지요다구에 위치한 부동산 중개·민박 운영 회사였다.
회사 측은 해당 아파트를 투자 목적으로 매입했으며 향후 매각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건물에서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는 의혹은 부인했다.
같은 미나토구의 32층짜리 타워맨션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됐다.
닛케이 취재진은 샤오훙수에 올라온 숙박 광고를 통해 23층 객실을 직접 예약했다. 약 60㎡ 규모로 침대 4개와 이불 2채가 마련돼 최대 6명이 숙박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숙박료는 2박에 10만4000엔이었다. 예약 과정에서 연락 수단은 중국 메신저 위챗으로 바뀌었고, 취재진은 일본 간편결제 서비스 페이페이를 통해 계약금 5만엔과 잔금 5만4000엔을 나눠 송금했다.
체크인 당일에는 한 남성이 건물 정문에서 취재진을 기다리다가 뒷문으로 안내했다. 객실에 들어간 뒤에는 체크아웃할 때 열쇠를 탁자에 두고 가라고 설명했다.
해당 건물은 미나토구가 공개한 민박시설 목록에 등록돼 있지 않았다. 아파트 관리 규약에서도 민박 영업을 금지하고 있었다.
예약·결제 모두 외국어로…행정당국 추적 어려워
문제는 숙박객이 실제로 드나들더라도 영업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나토구 보건소는 해당 아파트 관리회사로부터 무허가 민박이 의심된다는 문의를 받았지만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외국어 SNS를 통해 숙박객을 모집한 뒤 메신저로 예약을 받고 모바일 결제로 돈을 주고받으면 행정당국이 거래 내역을 확인하기 어렵다.
숙박객에게 방문 목적을 물어도 친구 집에 머무는 것이라고 답하면 추가 조사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실제 숙박 여부와 금전 거래, 온라인 광고, 예약 과정의 대화 기록 등을 확보해야 무허가 영업을 입증할 수 있다.
객실 소유주와 실제 운영자가 다른 경우도 문제다. 닛케이가 직접 숙박한 객실의 소유주는 세입자가 허락 없이 민박을 운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결제 계좌와 관련된 인물 역시 민박 운영 사실을 부인했다.
일본에서 주택을 민박시설로 운영하려면 관련 법령에 따라 신고하거나 숙박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주택숙박사업법에 따른 민박은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해야 하며 연간 영업 가능 일수도 최대 180일로 제한된다. 아파트 관리 규약에서 민박을 금지한 경우에는 해당 주택에서 영업할 수 없다.
미나토구는 무허가 숙박시설에 대한 조사와 지도·단속을 이어가는 한편 관련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례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신주쿠 불법 민박 민원 1년 새 78% 증가…규제 강화
도쿄의 민박 관련 민원도 빠르게 늘고 있다.
도쿄에서 민박시설이 가장 많은 신주쿠구에 따르면 2025회계연도 무허가 민박 관련 민원은 410건으로 집계됐다. 전년도 231건보다 약 77.5% 증가한 규모다.
정식 신고된 민박시설과 관련한 민원도 같은 기간 561건에서 924건으로 늘었다. 주요 내용은 소음과 쓰레기 배출, 흡연 등이다.
신주쿠구는 지난 9월 주거전용지역과 학교 주변 등에서 민박 영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규제 강화 방침을 발표했다.
무허가 민박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도쿄의 높은 숙박 수요가 있다.
도쿄도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도내 민박과 간이숙박시설의 평균 숙박료는 1박에 9837엔으로 5년 전보다 약 60% 올랐다. 숙박료가 비싼 일부 시설은 일반 호텔이나 료칸보다 높은 가격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이나 단체 관광객은 호텔 객실 여러 개를 예약하는 대신 침실과 거실, 주방이 갖춰진 아파트 한 채를 빌리는 방식을 선호하기도 한다.
도심 타워맨션 특유의 보안시설과 입주민 간 교류가 적다는 점이 불법 영업의 적발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7월 도쿄 경찰은 신주쿠구의 한 타워맨션 객실에서 운영되던 불법 포커 도박장을 적발해 남녀 7명을 체포했다. 외부에서는 일반 주거 공간처럼 보이는 특성을 이용한 사례다.
전문가들은 불법 영업으로 얻는 수익이 적발 시 부담해야 하는 벌금보다 많으면 단속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민박 문제에 정통한 스즈키 다카히로 변호사는 닛케이에 벌금 상한을 높이고 조직적으로 무허가 영업을 벌이는 법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도쿄의 숙박 수요 증가와 주거시설의 상업적 이용이 맞물리면서 아파트 관리 규약과 민박 관련 법률을 위반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주민 생활환경을 보호하고 무허가 숙박업을 차단하기 위한 규제 강화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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