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첼로와 두 세대의 피아노

노라스, 이경숙의 딸 김규연과 한 무대

“서로의 소리에 반응하는 대화의 과정”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와 피아니스트 김규연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와 피아니스트 김규연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600년에 만들어진 첼로가 있다.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란의 풍파를, 역사의 격랑을 견뎠다. 이 첼로를 64년간 품에 안고 활을 그었다. 핀란드 첼로의 거장 아르토 노라스(84)다. 그가 피아니스트 김규연(40, 서울대 교수)과 한 무대에 선다. 올해로 18번의 축제를 맞은 서울국제음악제(14일, 예술의전당)를 통해서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둘 사이에 흐른다. 50년 전 한국을 처음 찾아 교단에 섰고, 한국 피아노계 대모인 이경숙(81)과 실내악 무대를 나눴다. 김규연의 어머니다. 그는 반세기에 가까운 시차와 세대를 건너 어머니의 파트너였던 ‘살아있는 전설’과 대등한 음악적 동반자로 마주하게 됐다.

노라스는 “한국은 가장 많이 방문한 나라 중 나라이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한국에 온 만큼 제자나 음악가가 아니라도 많은 벗이 있다”고 말했다.

반세기 지켜본 한국 첼로… “현악기 연주자는 자신의 소리로 말해야”

노라스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건 1970년대 후반이었다. 동료였던 첼리스트 현민자의 초청으로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한국의 미래 세대를 만났다.

“당시 한국의 첼로 교육은 지금처럼 폭넓게 자리 잡기 전이었어요. 이후 한국의 음악 교육과 첼로 연주 수준이 크게 발전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의 성장은 숫자로 드러난다. 노라스는 지난 8~9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조르주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에서 첼로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그에 따르면 지원자 247명 가운데 52명이 한국인. 결선에 오른 셋 중 한 명이 3위를 차지한 박상혁이었다.

그는 “한국의 첼리스트들은 이제 국제 음악계에서도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됐다”며 “오랜 시간 그 변화를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라고 했다.

일평생 첼로를 켜는 동안 그는 달라지는 음악 환경과 시대, 세대를 몇 차례나 지나왔다. 젊은 세대의 눈부신 기교와 성장을 보는 것은 놀랍고 기쁜 일이다.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노라스는 “연주자의 기량은 계속 발전한다”며 “오늘날의 젊은 연주자들은 과거보다 훨씬 뛰어난 테크닉을 갖추고 있고 놀라울 정도로 어려운 기교도 능숙하게 소화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가 생각하는 ‘음악의 본령’은 다른 데에 있다.

“누군가는 우리 세대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연주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빠르고 능숙하게 연주하느냐가 아니에요. 자신만의 소리로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청중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교가 뛰어나다는 사실만으로 음악적인 표현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가 연주자로서 중요하게 두는 것은 ‘자기 목소리’다. 노라스는 “가수의 목소리가 노래의 본질적인 표현 수단인 것처럼 현악기 연주자에게도 자신만의 소리와 음악적 언어가 중요하다”며 “청중에게 최종적으로 전달되는 것은 손가락의 속도나 기교 자체가 아니라, 그 소리를 통해 표현되는 음악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노라스는 지금도 사람의 목소리를 닮은 이 악기를 벼리고 또 벼린다. 녹음과 인터넷으로 누구나 명연주를 들을 수 있는 시대지만, 그는 배우는 것과 모방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결국 악보를 깊이 이해하고, 자신만의 소리와 해석으로 작품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예전보다 발전했다기보다는, 아직 더 배워야 할 면이 많이 남은 것 같아요.” (노라스)

거장에게 바친 소나타… 악보에 담긴 뜻을 소리로

세대를 건너 만난 두 사람의 무대에선 서울국제음악제 음악감독인 작곡가 류재준의 ‘첼로 소나타 3번’이 연주됐다. 노라스의 80세 생일을 기념해 그에게 헌정된 곡이다. 오랜 벗인 류재준은 이 곡에 거장이 걸어온 생애를 담았다. 노라스는 펜데레츠키, 살리넨, 류재준 등 동시대 작곡가들과 긴밀히 작업했다. ‘현대음악의 거장’ 펜데레츠키와 아울리스 살리넨의 작품들을 초연, 첼로 레퍼토리의 지평을 넓혀온 것도 그에겐 중요한 소명이었다.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와 피아니스트 김규연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와 피아니스트 김규연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갓 태어난 곡을 마주하는 거장의 태도는 담담하다. 노라스는 “새로운 작품은 연주되는 순간부터 생명을 얻는다”며 “초연 이후 다른 연주자들이 작품을 연주하면서 해석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고, 작품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펜데레츠키와의 일화는 악보가 고정된 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처음엔 작곡가에게 직접 조언을 들으며 연주했고, 이후 그가 직접 지휘하는 연주를 접했는데 해석이 상당히 달랐다”며 “제가 그 이유를 묻자, 펜데레츠키는 자기 작품을 직접 지휘할 때는 작품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작품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작곡가조차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경험”이라고 그는 돌아본다.

류재준 작곡가의 작품은 두 사람 모두에게 특별하다. 노라스는 “그의 작품에는 음악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분명히 있다”며 “연주자로서는 그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악보에 담긴 음악을 가능한 한 충실하게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규연의 생각도 같은 곳을 향했다. 그는 “류재준 선생님은 악보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며 “연주자가 관객에게 전해야 하는 모든 메시지가 이미 악보에 담겨 있다. 그래서 악보에 최대한 충실해지려 한다. 그것을 제 음악과 소리 안에 담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400년 첼로와 매번 낯선 피아노… “새로운 경험의 시작”

두 사람에게 실내악은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섬세한 대화’다. 노라스는 서로 다른 음악가들이 만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으로 ‘독선’을 꼽는다.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은 각자 음악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작품 전체를 위해 무엇이 가장 좋은지 찾아가는 것입니다.” (노라스)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와 피아니스트 김규연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와 피아니스트 김규연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김규연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실내악을 상대에게 끊임없이 반응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단순히 여러 사람이 동시에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소리에 반응하며 하나의 음악적 대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죠.” 프레이즈와 음정, 음악의 흐름을 쉼 없이 맞춰가는 일이 그에게는 즐거움이다. 김규연은 “피아노에는 이미 몇십 가지 악기가 들어 있다”며 “그 악기를 연주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며 생각을 나누고 의견을 맞춰가는 게 정말 재미있다”고 말했다.

지금에 이르기까진 연주자로의 내적 변화도 겪었다. 세월은 그의 귀를 바꿔 놓았다. 김규연은 “어릴 때를 생각하면 확실히 많이 바뀌었고, 아직도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협연할 때도, 실내악을 할 때도 서로 듣는 귀가 많이 열린 것 같다”고 했다. 그럴수록 고민은 깊어진다. “들리는 게 많을수록 생각도 많아져서, 연주할 때는 모든 것을 덜어내야 하지만요.” (김규연)

노라스가 품은 1600년산 첼로는 반세기가 넘도록 그의 분신으로 존재한다. 그토록 가까이 있는 악기지만, 첼로가 날마다 같진 않다. 그는 “오랜 세월 함께해 온 악기지만, 소리는 날씨나 주변 환경에 따라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며 “악기는 환경에 반응하기 때문에 연주할 때마다 그 상태를 살피고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악기보다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의 변화를 더 기민하게 바라본다. 그는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고, 악기를 다루는 방식과 음악을 이해하는 관점도 달라진다”고 했다. 여든을 넘긴 거장은 ‘몸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목이나 어깨 같은 근육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죠. 아프면 연주를 못 하니까요.” (노라스)

피아니스트의 사정은 정반대다. 공연장마다 처음 만나는 악기와 마주해야 한다. ‘자기만의 악기’를 전국, 전 세계로 싣고 다니긴 어렵기 때문이다. 김규연은 “악기가 달라지면 이상적으로 상상하는 프레이징이나 인토네이션, 하모니를 표현하기 위해 건반을 어떤 타이밍에, 어떤 소리를 상상하며 쳐야 하는지 매번 다르게 해내야 한다”며 무대 아래의 고뇌를 드러냈다.

오랜 인연을 건너 마주했지만, 김규연에게 이번 무대는 회고가 아닌 출발이다. 그는 “저희 두 사람은 함께 연주한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며 “그렇기에 이번 공연이 이미 쌓인 추억을 돌아보는 자리라기보다는, 함께 음악을 만들어 가는 새로운 경험의 시작”이라며 다가올 더 많은 날을 기다렸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