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해진[영화 ‘암살자(들)]
배우 유해진[영화 ‘암살자(들)]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싱가포르국제영화제(SGIFF)가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을 예정대로 올해 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할 방침이다.

SGIFF는 7일 입장문을 통해 “‘암살자(들)’을 둘러싼 일련의 논의들을 인지하고 있다”며 “제작진의 창작적 비전을 존중하며 이 작품은 변함없이 제37회 싱가포르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SGIFF는 “‘암살자(들)’은 예술적 성취와 동시대 아시아 영화에 대한 기여를 바탕으로 SGIFF의 독립적인 프로그래밍 과정을 통해 선정됐다”며 “SGIFF의 역할은 싱가포르와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의미 있는 영화들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고 관객들이 다양한 이야기와 관점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작진은 이 작품을 역사적 사건에 허구의 인물과 상황을 결합한 영화적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설명해왔다”며 “역사적 결론을 내리거나 사실을 왜곡하거나 어떠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명확히 했다”고 전했다.

SGIFF는 ‘암살자(들)’이 국내 개봉 이후 약 2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점도 언급했다.

앞서 국민의힘은 소속 의원 109명 전원 명의로 전날 제레미 추아 싱가포르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암살자(들)’의 개막작 선정을 철회해달라고 촉구했다. 영화가 역사를 왜곡하고 육영수 여사 유가족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장동혁 대표가 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고 육영수 여사의 충북 옥천 생가를 방문해 역사 왜곡 논란을 빚고 있는 영화 암사자(들)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장동혁 대표가 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고 육영수 여사의 충북 옥천 생가를 방문해 역사 왜곡 논란을 빚고 있는 영화 암사자(들)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피살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당시 합동수사본부는 재일교포 문세광이 북한과 조총련의 사주를 받아 단독으로 범행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문세광의 권총에는 총알이 5개 들어가는데 현장에서는 6번의 총성이 울린 점, 육 여사를 사망에 이르게 한 탄환이 사라진 점 때문에 조사가 미흡했다는 지적과 음모론이 제기돼 왔다.

영화 역시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의 기반 위에서 문세광의 배후에 또 다른 세력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기자와 경찰이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에서 대통령 경호처와 중앙정보부는 이를 방해하고 입막음을 하려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영화 내에서 배후의 구체적인 실체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모종의 국가권력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다만 그 국가권력을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명시 혹은 암시하는 대목은 등장하지 않는다. 관객 각자가 배후를 추리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결말을 열어놓았다.

영화 결말을 놓고 보수·진보 진영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공방을 벌이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영화가 박 전 대통령을 사건의 배후로 지목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등 고인의 자녀들이 피해자로 생존해 있는데 유가족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진보 진영에서는 영화가 박 전 대통령을 배후로 지목하지 않고 있다는 반박이 나오고 있다. 영화에 박 전 대통령이 등장하는 대목은 총격 당시 상황을 그린 짧은 순간뿐이며, 사건의 배후와 관련한 부분에서는 전혀 등장하거나 언급되지 않는다.

싱가포르국제영화제는 1987년 시작된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국제영화제로, 아시아 영화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작품을 소개해왔다. 올해 제37회 영화제는 이달 2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열린다.


paq@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