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철제 금고에 디자인 입혀 시장 개척

인테리어 디자인 금고 ‘루셀’로 국내 소비자 수요 창출

2024년 공장 화재 딛고 생산능력 확충

AI·IoT 접목해 스마트 보안가전으로 영역 확대

두 딸과 함께 혁신 이어가며 100년 기업 도전

김영숙 선일금고 회장이 지난 6일 경기도 파주 본사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부애리 기자]
김영숙 선일금고 회장이 지난 6일 경기도 파주 본사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부애리 기자]

[헤럴드경제(파주)=부애리 기자] “혁신이라는 것은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겁니다. 똑같이 따라가는 것은 소용이 없어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려면 힘들지만 그래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김영숙 선일금고 회장이 50년 넘게 금고 산업에 몸담으며 지켜온 경영철학은 ‘혁신’이다. 남편인 고(故) 김용호 창업주와 함께 회사를 일궈온 그는 2004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홀로 경영을 책임지게 됐다. 이후 두 딸과 함께 새로운 제품 개발과 시장 개척에 나서며 선일금고의 변화를 이끌어왔다. 금고에 디자인을 입혀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고, 이제는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보안 가전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 경기 파주시 선일금고 본사에서 만난 김 회장은 “최초와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라며 “선일금고를 대대손손 이어지는 100년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금고와 함께한 50년…디자인 혁신으로 시장 바꿨다

1972년 설립된 선일금고는 국내 금고 산업을 대표하는 장수기업이다. 현재 세계 100여개국에 금고를 수출하고 있으며, 국내 금고 시장 점유율은 약 80%에 달한다. 김 회장이 이끈 가장 큰 변화는 금고를 사무실과 은행에서 사용하는 산업용 제품에서 가정에서도 사용하는 인테리어 제품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김 회장은 “예전에는 금고를 선물하면 사무실 비품 창고나 어두운 구석으로 들어갔다”라며 “왜 금고는 사무실에서 쓰는 까만 금고밖에 없을까 생각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여자가 만들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금고도 예쁘게 만들어 집 안에 당당하게 놓을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금고는 기업과 관공서, 금융기관에서 주로 사용됐다. 김 회장은 현금이나 귀금속뿐 아니라 가족사진과 중요한 문서 등 소중한 물건을 보관하는 만큼 금고도 생활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제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고민에서 탄생한 제품이 2008년 선보인 인테리어 디자인 금고 브랜드 ‘루셀(LUCELL)’이다. 기존 금고에 다양한 색상과 패턴을 적용하고 명화와 장식 요소를 접목했다. 금고를 숨겨야 하는 물건이 아니라 거실이나 침실에 놓아도 어울리는 하나의 가구로 만든 것이다.

당시만 해도 금고에 디자인을 접목한다는 발상은 낯설었다. 김 회장은 “루셀을 처음 선보였을 때 저런 금고를 어떻게 파느냐는 반응이었다”라며 “본사에서 직접 나서 백화점 판매를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디자인 금고 출시 이후 가정과 개인 소비자까지 고객층이 확대됐고, 유통망도 백화점과 홈쇼핑 등으로 넓어졌다.

김 회장은 “국내에 없던 수요를 만들어낸 것이 가장 큰 성과”라며 “과거에는 금고를 어디서 사느냐고 물으면 청계천을 떠올렸지만, 이제는 백화점에서도 판매하는 제품이 됐다”라고 말했다.

루셀 리스펙트 금고 이미지 [선일금고]
루셀 리스펙트 금고 이미지 [선일금고]

내화 기술로 쌓은 신뢰…낙산사 화재서도 입증된 경쟁력

김 회장이 혁신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창업주가 일군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과거 국내 금융기관들이 일본산 금고를 수입해 사용하던 시절, 창업주는 해외에서 금고 기술을 익히고 내화 성능을 갖춘 제품을 개발하며 국산화에 나섰다.

2005년 강원 양양 낙산사 화재 당시에도 선일금고 제품이 거센 불길 속에서 내부에 보관된 고서적 등을 지켜내면서 유명세를 탔다. 보물인 낙산사 동종마저 녹아내린 대형 화재에서 금고의 내화 성능이 알려지면서 선일금고의 기술력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김 회장은 창업주가 쌓아온 기술력과 품질에 디자인 혁신을 더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주력했다. 가전제품이 발전하듯 금고 역시 시대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공장 화재로 위기, ‘전화위복’ 계기…스마트 보안 가전으로 도약

50년 넘게 금고 산업에 몸담아온 김 회장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2024년 4월 발생한 공장 화재로 생산시설과 설비의 75% 이상이 소실된 것이다. 당시 수출과 국내 홈쇼핑 주문이 밀려 있던 상황에서 생산라인이 멈춰 섰다.

김 회장은 화재를 오히려 도약의 계기로 삼았다. 노후 공장을 새롭게 짓고 생산설비를 확충하면서 월 생산능력을 화재 이전 7000대에서 올해 1만5000대로 늘렸다. 연말까지 2만대, 내년에는 3만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그는 “50년 넘게 사용한 공장을 새롭게 시작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라며 “대대손손 이어갈 기업인 만큼 미래를 생각해 공장을 다시 지었다”라고 말했다.

선일금고의 또 다른 성장동력은 기술 혁신이다. 금고의 본질인 내화·방도 기능에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 스마트 보안 가전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선일금고는 국내 이동통신사들과 협력해 IoT 금고를 개발해 왔다. 스마트폰으로 금고 주변 상황을 확인하고 이상 상황을 감지하는 기능을 도입했으며, 카메라와 근접감지 센서 등을 적용해 보안 기능을 강화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홈 플랫폼인 스마트싱스와 연계한 서비스도 추진하고 있다. 금고가 이동하면 스마트폰으로 알림을 보내는 등 기존 보안 기능을 강화하고 해외 고객들도 스마트 보안 기능을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회장은 “투자를 하지 않으면 회사가 클 수 없다”라며 “디자인뿐 아니라 기술에서도 다른 회사가 하지 않는 것을 먼저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프리미엄 아파트도 새로운 시장이다.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공급되는 고급 주거단지를 중심으로 드레스룸 붙박이장 등에 금고를 설치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선일금고는 빌트인 금고뿐 아니라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에 입주민 전용 대여금고를 마련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해외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내화금고의 기술력에 차별화된 디자인을 결합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김 회장은 “디자인 금고로 국내시장을 바꿨듯 세계시장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김영숙 선일금고 회장이 지난 6일 경기도 파주 본사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부애리 기자]
김영숙 선일금고 회장이 지난 6일 경기도 파주 본사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부애리 기자]

두 딸에게 물려줄 것은 ‘혁신 정신’…100년 기업 향한 꿈

김 회장의 경영철학은 다음 세대로도 이어지고 있다. 두 딸은 현재 회사에서 각각 생산·기술과 영업·관리 분야를 맡고 있다.

김 회장은 가업승계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기업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경영능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은 아무나 경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승계를 하더라도 다음 세대가 자질과 경영 능력을 갖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음 세대에 반드시 물려주고 싶은 가치로는 혁신을 꼽았다. 김 회장은 “최초와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혁신해야 한다”라며 “세상에 공짜는 없다. 생각만 해서는 안 되고 실행하고 실천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이 꿈꾸는 선일금고의 미래는 단순한 금고 제조업체를 넘어서는 것이다. 금고를 통해 소비자에게 ‘안심’이라는 가치를 제공하는 스마트 보안 가전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다.

김 회장은 “제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스스로 혁신하고 성장하는 100년 기업으로 남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김영숙 선일금고 회장이 걸어온 길 ▷1955년 파주 출생 ▷1976년 선일금고 입사 ▷1997년 고려대 산업대학원 고위산업정책과정 수료 ▷2004년 연세대 AMP과정 수료 ▷2005년 선일금고 대표 취임 ▷2007년 서울대 GLP과정 수료 ▷2017년 파주 여성경제인위원회 위원장 취임 ▷2023년 파주시행복장학회 이사장 취임 ▷ 2026년 파주상공회의소 회장 취임


b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