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EI, 식량위기 0~3단계 ‘국가 대응체계’ 제안
공급량 평년보다 20% 줄면 2단계…하루 공급열량 1850㎉ 밑돌면 3단계
최고 단계선 증산·식량 배분…정부·지자체·민간 ‘위기 대응 기금’도 검토
[헤럴드경제=김선국 기자] 해외에서 들여오던 곡물 수입이 막혀 국민이 먹을 식량이 부족해지면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식량 위기 대응본부’를 꾸려 범정부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식량 공급량이 평년보다 20% 이상 줄면 위기 2단계, 국민 1인당 하루 공급 열량이 1850킬로칼로리(㎉) 아래로 떨어지면 최고 수준인 3단계로 올려 국내 증산과 한정된 식량의 배분까지 추진하는 방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6일 ‘식량안보 위기 시나리오와 대응 체계 구축’ 보고서를 발간했다. 연구진은 최근 식량 위기가 단순히 가격이 오르는 문제에서 수출 제한과 공급망 교란으로 필요한 물량 자체를 확보하지 못하는 문제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에는 기상이변 등으로 곡물 재고가 부족해 가격이 오르더라도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면 필요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제분쟁과 식량보호주의 확산 등으로 돈을 내고도 곡물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은 주요 곡물의 해외 의존도가 높다. 2023 양곡연도 기준 곡물자급률은 22.2%에 그쳤다. 콩 자급률은 9.3%, 밀은 1.1%, 옥수수는 0.8%에 불과하다. 국제 공급망이 흔들리면 국내 식량 수급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연구진은 이에 따라 식량 위기를 평시인 0단계부터 가장 심각한 3단계까지 4단계로 나누고 단계별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0단계에서는 농지 등 국내 생산기반과 공급망을 유지·강화한다. 위기가 현실화되는 1~2단계에서는 출하·판매를 조정하고 수입을 촉진하는 동시에 국내 생산을 늘린다. 특히 해당 품목의 공급량이 평년보다 20% 이상 감소하면 2단계로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가장 심각한 3단계는 국민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먹거리 공급마저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국민 1인당 하루 공급 열량이 1850㎉ 아래로 떨어지면 3단계로 판단한다. 이 단계에서는 필요한 열량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생산을 늘리고 한정된 식량을 공정하게 배분한다. 급등한 식량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도 병행한다.
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정부 대응체계도 강화한다. 1~2단계에서는 ‘식량 위기 대응위원회’를 설치하고, 3단계에서는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식량 위기 대응본부’를 가동하는 방안이다. 농림축산식품부를 중심으로 재정경제부와 외교부, 해양수산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 대응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위기가 터진 뒤 대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평상시부터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연구진은 국내 식량 비축시설과 비축량을 늘리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식량 위기 대응 기금’ 조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기금은 식량 비축과 방출, 수입 조정을 통한 시장 안정, 위기 발생 때 긴급 수급 조치, 증산과 생산기반 복구 등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실제 곡물 수입 중단과 같은 상황을 가정한 정기적인 모의훈련을 실시해 관계기관과 생산자, 민간업계의 역할을 미리 점검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식량 위기 대응체계를 실제로 작동시키기 위한 법적 기반도 과제로 꼽았다. 별도의 식량안보 관련 법률을 마련해 국민의 식량 접근권과 국가의 안정적인 식량 공급 책임을 명시하고 농지·수리시설 보전, 종자산업 보호·육성, 전략적 비축과 위기 대응본부 설치 등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승준호 KREI 부연구위원은 “식량안보는 위기가 발생한 뒤 대응하기보다 평상시부터 단계별 위기 수준에 따른 선제적 대응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안정적인 식량 공급과 국민의 식량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농지와 생산기반 유지, 전략적 비축 확대와 함께 실제 위기에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대응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dastra@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