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월 재신청자, 작년 전체 82.6%…60대 이상 93.1%

상환 약정 깨지거나 새 빚 내 재신청…성실 상환자 박탈감 우려

“무조건적 감면 아닌 자구노력 심사”…소득·취업 지원 병행해야

[챗GPT로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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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정환 기자] 정부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빚 탕감’ 정책을 확대하는 가운데, 채무조정을 받고도 다시 조정을 신청한 사람이 올해 들어 3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와 소득 부진으로 채무조정 약정을 지키지 못하는 서민이 늘어난 영향이지만, 반복적인 채무 감면이 ‘갚지 않아도 결국 구제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성실하게 빚을 갚은 차주와의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재신청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이종욱 국민의힘 의원이 신용회복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채무조정 재신청자는 2만7864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재신청자 3만3718명의 82.6%에 달한다.

신복위 채무조정은 이자율을 낮추거나 상환 기간을 늘리고, 상환 능력에 따라 원금 일부를 감면해주는 제도다. 채무자가 변제금을 4차례 이상 내지 않아 기존 약정이 실효된 경우 3개월 뒤 다시 신청할 수 있다. 채무조정을 통해 기존 빚을 모두 갚았더라도 이후 새로운 채무가 발생하면 재신청이 가능하다.

재신청자는 고령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었다. 올해 8월까지 60대 이상 재신청자는 4745명으로, 지난해 연간 5099명의 93.1%에 달했다. 불과 8개월 만에 지난해 전체 규모에 근접한 것이다.

경제활동의 중심 연령대인 40·50대 재신청자는 올해 1만575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재신청자 1만9079명의 82.6% 수준이다.

청년층에서도 채무조정을 반복해서 신청하는 사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대 이하와 30대 재신청자는 2022년 7253명에서 2023년 8751명, 2024년 8762명, 지난해 9540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8월까지 7369명이 다시 채무조정을 신청해 지난해 연간 인원의 77.2%에 이르렀다.

채무조정을 받고도 약정이 실효되거나 다시 빚을 지는 사람이 늘어난 것은 취약차주의 소득 기반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당장의 원리금 부담을 낮춰주더라도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생활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또다시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언 발에 오줌 누기처럼 당장의 채무 부담은 덜었지만 몇 달 뒤 다시 생활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라며 “경기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아 채무조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경원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도 “채무조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채무 감면과 함께 소득 여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취업·복지·소득 연계 프로그램 등 복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가 채무 감면을 잇달아 확대할 경우 상환 능력이 있는데도 고의로 빚을 갚지 않거나 추가 구제를 기대하는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원리금을 줄여 소비를 아끼며 빚을 갚아온 성실 상환자 입장에서는 반복적인 채무조정이 역차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채무조정의 문턱을 일률적으로 높이기보다 재신청 원인과 상환 노력, 신규 채무의 용도 등을 면밀히 따져 지원 대상을 선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생계비 부족이나 질병·실직 등 불가피한 사유로 다시 빚을 진 차주와 상환 능력이 있는데도 제도를 반복적으로 이용하는 차주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종욱 의원은 “반복적인 채무조정은 도덕적 해이를 키우고 성실 상환자에게 박탈감을 줄 수밖에 없다”며 “기존 채무조정 이행 여부와 신규 채무 발생 경위를 철저히 심사해 성실 상환자가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재신청자 증가만으로 모럴해저드가 확산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채무조정 제도가 자리를 잡으면서 전체 신청자가 늘어난 데다, 약정이 실효된 차주를 대상으로 재신청 안내를 강화한 영향도 있다는 설명이다.

전체 채무조정 신청자는 2022년 13만8202명에서 2023년 18만4867명, 2024년 19만5032명, 지난해 20만9060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채무조정 확정 인원도 2022년 12만1095명에서 지난해 18만9062명으로 늘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전체 채무조정 신청자가 지속해서 늘어나는 과정에서 재신청자도 함께 증가한 것”이라며 “재신청 증가 폭이 전체 신청자 증가 폭을 크게 웃도는 상황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취약차주의 재기를 돕는 동시에 도덕적 해이를 차단할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포용금융 정책은 아직 청사진에 머물러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포용금융전략추진단’을 출범시키고 금융회사 내 ‘포용금융 최고책임자’(CIFO) 도입과 건전성 규제 합리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출범 이후 수개월이 지나도록 중간 발표나 세부 지침은 나오지 않았다. ‘잔인한 금융’을 비판하며 포용금융을 주도한 김용범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사임한 데다 국정감사까지 앞두면서, 관련 정책이 정부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분야별 회의를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채무자의 재기를 지원하면서도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할 세부 방안을 연말까지 순차적으로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atto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