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크리마’ 캐롤린 응우옌 연출가 인터뷰
오는 2~3일 성남아트센터에서 韓 초연
파리·알랑송·뭄바이 잇는 장인의 손길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인 1가방’의 원칙을 지키는 세계가 있다. 한 명의 장인이 수천 번의 새들 스티치(Saddle stitch·양손 맞바느질)를 거쳐 최소 18~24시간 동안 공들여 완성하는 에르메스의 버킨백. 포플러 원목을 일일이 깎아 맞추고 수천 개의 황동 못을 수작업으로 박아 넣어 완성하는 루이비통의 유서 깊은 하드사이드 트렁크. 장인의 정교한 손끝에서 수백 번의 다이아몬드 퀼팅을 거쳐 탄생하는 샤넬의 2.55백. 그리고 단 한 번의 찬란한 순간을 위해 수천 시간의 손길이 오간 영국 왕실의 웨딩드레스까지….
매끄럽고 완벽한 사물의 신화는 언제나 찬미의 대상이다. 하지만 완성된 그것을 빚어낸 ‘누군가’의 신체적 수고로움은 쉽게 지워버린다. 화려함이 커질수록 그것을 만든 인간의 존재는 어둠으로 침잠한다.
“완성된 드레스는 세상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그것을 만든 장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가려져 있어요. 단 하나의 물건 뒤에도 역사와 계급, 무엇보다 인간의 삶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연출가 겸 극작가 캐롤린 기엘라 응우옌은 1일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세계를 매만진 ‘보이지 않는 손’을 이야기하는 연극 ‘라크리마(Lacrima)’가 오는 2~3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막을 올린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국립극장을 사로잡은 화제작이다.
“슬퍼서가 아니라 아름다워서”…뭄바이의 눈물
한 나라의 최고 존엄의 자리. 한때는 모두가 우러러봤던 가장 높은 곳, 영국 왕실의 드레스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이 작품의 불씨가 켜진 것은 뉴욕타임스에 실린 뭄바이 자수 장인들의 기사를 통해서였다.
응우옌 연출가는 “유럽 오트 쿠튀르의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수 작품들 뒤에 그들이 일하는 패션 하우스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이 작업에 함께 하는 남성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돌아봤다.
애초 폭력과 비밀, 재봉을 주제로 한 여성 중심의 공연으로 기획됐던 ‘라크리마’는 방향을 완전히 틀어 인도의 자수 공방으로 향했다.
응우옌 연출가는 그간 치밀한 현장 리서치를 통해 역사의 그늘에 가려진 주변부 존재들을 무대의 한가운데에 세워왔다. ‘라크리마’ 역시 그가 축적해 온 작품의 연장선에 있다. 뭄바이에서 장인들을 마주한 장면들은 지금도 강렬하다.
“마음이 벅차올랐던 순간이 아주 또렷하게 기억나요. 눈물이 흘렀어요. 슬퍼서가 아니라 아름다움 때문이었어요. 작업하는 손짓의 아름다움, 공동 작업의 아름다움, 그리고 국경과 세대를 초월하는 이 장인 정신의 아름다움에 압도됐어요.“
프랑스의 리서치 현장에선 레이스 공예가부터 재봉사의 일은 모두 여성의 것이었다. 인도 뭄바이는 달랐다. 그는 “공방은 99%가 남성으로 구성된 세계였다. 남성 장인들이 놀라울 정도의 정밀함과 인내심으로 여성용 드레스 직물을 다루고 있었다”며 “그 손끝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9057시간의 바느질, 멈추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
“영국 공주의 드레스 위에는 결코 해가 지지 않는다.” (‘라크리마’ 대사 중)
무려 8개월, 총 9057시간. ‘라크리마’는 영국 왕실 공주의 웨딩드레스 제작이라는 허구적 사건을 따라간다. 지난한 시간의 노동을 거쳐야 역사에 남을 운명의 드레스 한 벌이 완성된다. 하지만 무대 위 주인공은 공주도, 화려한 조명을 받는 수석 디자이너도 아니다.
응우옌은 “공주나 왕, 위대한 디자이너를 중심에 놓는 작품은 이미 세상에 넘쳐난다”며 “이 프로젝트의 유일한 관심사는 경이로운 작품을 만들지만 결코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이들을 이야기의 중심에 세우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파리 생토노레 명품 거리의 오트 쿠튀르 하우스에서 시작된 여정은 프랑스 알랑송의 전통 레이스 공방을 거쳐 7000여 km 떨어진 인도 뭄바이의 자수 작업장으로 뻗어 나간다. 극도의 보안과 비밀 유지가 요구되는 현장, 침묵이 강요되는 공간 속에서 노동자들의 몸은 서서히 망가져 간다.
무대 위에는 파리와 알랑송, 뭄바이 세 공간이 분할 화면과 실시간 영상 송출을 통해 동시 교차적으로 펼쳐진다.
“대영제국의 구호 같은 대사는 글로벌 규모로 조직된 현대 노동의 시스템을 의미해요. 파리에서 하루가 저물 때 뭄바이의 누군가는 여전히 일하고 있고, 뭄바이가 잠들면 세계 다른 곳의 생산 라인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하죠. 영상은 서로 만나지 않더라도 동일한 드레스를 완성하기 위해 기여하는 사람들, 행위들, 그리고 기술의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를 드러내요.“
얼핏 이야기는 영국 왕실의 드레스를 만들기 위한 착취의 현장을 고발하는 연극으로 볼 수도 있다. 응우옌은 그러나 “이 작품을 노동 착취 이야기, 눈에 띄지 않는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특권층을 위해 사치스러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로만 풀었다면 오히려 쉬웠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노동 착취’의 현실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공주의 드레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선 손놀림의 아름다움과 장인의 자부심을 발견했다.
“알랑송과 뭄바이에서 전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손기술을 가진 소수의 전문가를 만났어요. 전 ‘부자들의 물건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이 불쌍한 사람들을 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그것은 그들을 또 다른 방식으로 폄하하고, 결국 그들의 힘을 빼앗는 일이니까요.”
‘라크리마’에선 ‘모순’이 작품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한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깊이 사랑하면서도, 그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는 불공정한 노동 시스템과 자본 논리로 인해 고통받을 수 있다는 모순이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했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들여다보는 작업에서 응우옌은 ‘연극 윤리’를 고민한다. 그는 “창작 과정에서 당사자를 직접 만나고 그들의 삶과 현실에 가까이 다가간다”며 “하지만 이 작업은 다큐멘터리가 아니기에 그들과의 만남은 결국 허구화를 거친다”고 했다. 그때마다 응우옌이 세워두는 원칙은 “한 사람을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로만 축소하지 않는 것”이다.
“작업장의 여공은 단순히 글로벌 자본주의의 희생양이 아니며, 자수 장인 역시 열악한 노동 조건만 견디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들에게는 직업과 지식, 자부심, 가족과 욕망이 있어요. 각각의 사람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미리 결정하지 않는 것이 내 연극의 윤리예요.”
사적인 기억에서 출발한 ‘눈물의 동시대사’
“너에게 다다르기까지 걸린 그 모든 시간” (‘사이공’의 대사 중)
베트남계 어머니와 알제리계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응우옌은 그의 정체성과 사적 기억을 무대 위에서 ‘집단의 서사’로 길어 올렸다.
1956년 사이공과 1996년 파리의 식당을 교차하며 제국주의의 식민 잔존과 이산의 슬픔을 응시한 ‘사이공’(2017), 대규모 실종 사건 이후 남겨진 이들의 연대와 상실을 다룬 ‘형제애, 환상 동화’(2021), 해외 입양인의 기억과 가족 제도의 모순을 추적한 ‘유년의 아카이브’(2022)에 이르기까지, 그의 무대는 언제나 국경과 언어의 경계를 넘어 디아스포라와 타자들의 목소리를 엮어냈다.
특히 그는 초기 대표작 ‘사이공’을 통해 “나의 내면적 서사가 식민 역사와 이주라는 거대한 흐름과 얽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연출가로서 창작 활동에 영감과 시선의 방향을 제공한 사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를 꼽는다.
응우옌은 “에르노의 글은 지극히 개인적이라고 생각했던 이야기 속에 미처 알지 못했던 거대한 사회와 역사가 담길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해줬다”며 “사적인 것은 결코 사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으며, 그 안에는 한 시대, 사회적 계급, 지배 관계, 집단적 기억이 담겨 있다”고 돌아봤다.
‘사이공’을 시작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온 그는 예술감독으로서 스트라스부르 국립극장을 소수가 아닌 다수, 모두를 위한 ‘공공의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는 “오늘날 예술가들은 다양한 곳, ‘우리 시대의 사방팔방(four corners of our time)’에서 온다”며 “이제 우린 무대 위에서 더 이상 백인 남성 연출가들만 보지 않는다. 더 많은 여성, 유색인종, 트랜스젠더 등을 무대 위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와 경험,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이 우리 무대 위에 존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라틴어로 눈물을 뜻하는 제목 ‘라크리마’엔 오랜 기간 ‘눈물의 동시대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무엇이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그는 ‘동시대의 눈물’을 기록하고 싶었다. 175분간 숨 가쁘게 이어지는 무대를 마주할 한국 관객들에게 그는 담담하고 묵직한 바람을 건넸다.
“한국은 현대 패션, 이미지, 사물, 문화의 흐름 속에서 그 자체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관객들이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발견할지 무척 궁금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거대한 글로벌 경제 시스템과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들 뒤에 언제나 ‘사람의 얼굴’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를,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이들의 행동이 지닌 아름다움에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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