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2월 19일~2월 25일 9차 당대회 개최

김정은 총비서 재추대…김여정 총무부장

당대회 부활 ‘총비서’ 3인 공통분모 완성

당규약 지켜 黨총비서 정당성 강화 노력

김정은 북한 조선로동당 총비서가 딸 주애와 2월 2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9차 당대회 기념 열병식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
김정은 북한 조선로동당 총비서가 딸 주애와 2월 2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9차 당대회 기념 열병식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북한이 2월 19~25일 개최한 조선로동당 제9차 대회(9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당 총비서로 재추대되었다.

김 총비서 동생인 김여정은 이번 당대회에서 당 부장(우리의 장관급)으로 승진했고, 당 총무부장을 맡았다.

최고 권력기구인 행정·입법부를 영도하는 로동당은 북한 최고 서열의 기관이다. 김정은이 이러한 위상의 당 대표격인 총비서에 재추대된 것은 사실상 최고지도자 자리를 연임하게 됐다는 의미다. 미국이나 한국에 비한다면 대통령에 재선된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월 23일 김정은의 당 총비서 재추대를 축하하는 축전을 보냈다.

시 주석은 축전에서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이후 김정은 총비서를 핵심으로 하는 노동당 중앙이 조선 인민을 단결·영도해 조선 사회주의 건설에서 새로운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위원장의 재추대는 “조선 당, 정부, 인민의 높은 신임과 진심 어린 지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했을 때 대표적인 칭호는 로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국방위원장이었다. 선대 김정일의 총비서 직위는 폐지됐다. 앞으로 총비서 호칭은 쓰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총비서를 부활시켜 본인이 올랐고, 이번 9차 당대회에서 재추대된 것이다. 당 총비서 직함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모두 사용했던 대표적 직위다. 김정은은 총비서에 추대되고 또 재추대되면서 김일성(1대)-김정일(2대)-김정은(3대)을 잇는 총비서 계보를 완성했다.

▶김일성 열던 당대회, 김정은 때 부활…김정일 3년상 유훈통치 답습=당대회는 김일성 재임 기간인 1980년 개최 이후 김정일 재임 기간에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 김정은 집권 이후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1946년 1차, 1948년 2차, 1956년 3차, 1961년 4차, 1970년 5차, 1980년 6차 대회가 열렸다. 모두 김일성 주석 시기다. 이후 36년을 건너뛰어 2016년 7차, 2021년 8차, 2026년 9차 대회가 열렸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하자, 김정은이 뒤를 이었다. 김정은은 앞서 2009년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정됐고, 2010년 9월 조선인민군 대장,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에 임명되며 후계 구도를 공식화했다. 2010년 10월에는 김정은 후계 지명 경축행사가 북한 주민이 총동원된 가운데 열렸다.

김정은은 부친상을 치른 뒤인 2012년 4월 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국방위원장직을 각각 신설해 그 자리에 추대됐다. 이어 2014년 4월 제1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됐고, 2016년 4월에는 로동당 위원장, 2016년 6월에는 국무위원회 위원장에 각각 추대됐다.

최고지도자 유고라는 비상 상황에 쓰던 공식 직함을 내려놓고, 점차 국가 최고지도자의 격에 맞는 직함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는 아버지 김정일의 권력 승계방식을 철저히 답습한 것이다. 김정일은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3년 간 ‘김일성 유언대로 통치한다’는 기조의 유훈통치를 펼쳤다. 그리고 ‘3년상’의 기간 동안 아버지의 사망 당시 직함인 당 총비서와 주석직에 취임하지 않았다.

대신 김일성 사망 전인 1993년 4월부터 맡았던 국방위원장 직함을 유지하는데 그쳤다. 3년 후인 1997년 7월 8일에는 탈상을 선언하고 당 총비서에 취임했다.

하지만, 당시는 소련 붕괴 이후 해외원조 상실, 경제정책 실패, 자연 재해 등으로 수십만 아사자들이 발생하던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김정일은 국가 주석으로 나아가는 대신, 국방위원장직에 머물기로 한다. 훗날 국가 비상시국에 군권을 틀어쥔 것이 김정일 체제를 안정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 총비서와 국방위원장은 김정일이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실권을 행사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국가 최고지도자의 기존 직함인 주석직은 결국 부활하지 않았다.

김정일이 가장 오래 사용한 대내외 공식 직함은 국방위원장(1993년 4월 9일~2011년 12월 17일)이었다. 국방위원장 재임 중이던 1997년 10월 8일 당 총비서에 올랐으나, 국방위원장으로 계속 불렸다.

김정일이 당 총비서 직함을 즐겨 쓰지 않은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김정일이 당 총비서에 오르는 과정에서 당규약을 따르지 않아 절차적 정당성에 흠결이 제기된 것이다. 당 규약에 따르면 총비서는 당중앙위원회 총회에서 선출되어야 하지만, 김정일은 총회를 소집하지 않고 총비서에 올랐다. 김정은은 이러한 선대의 사례를 본보기이자,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월 27일 평양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국방과학원이 새로 개발한 신형저격수보총(저격소총)을 주요 지도간부들과 군사 지휘관들에게 선물로 수여했다. 김 위원장은 당일 나눠준 저격수보총 시험사격에 직접 참여한 뒤 만점 표적지 과녁 사진을 공개했다. [연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월 27일 평양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국방과학원이 새로 개발한 신형저격수보총(저격소총)을 주요 지도간부들과 군사 지휘관들에게 선물로 수여했다. 김 위원장은 당일 나눠준 저격수보총 시험사격에 직접 참여한 뒤 만점 표적지 과녁 사진을 공개했다. [연합]

일단 김정은 역시 선대 김정일의 공식 직함인 총비서와 국방위원장에 즉각 오르지 않았다. 대신 제1비서, 제1국방위원장직을 신설해 자신이 추대된 상태에서 3년상을 치렀다.

아버지 김정일이 선대 김일성의 공식 직함인 당 총비서와 주석직에 바로 오르지 않고, 국방위원장으로 3년상을 치른 사례에 따른 것이다.

김정은은 3년상이 끝난 후인 2016년 총비서, 국방위원장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대신 국방위원장보다 더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통치 영향력을 갖는 로동당 위원장과 국무위원장직에 올랐다.

▶김정은, 절차적 정당성 공들여…‘김주애 승계’ 총비서 등극 관건=최고 권력기관인 당, 그리고 실권을 행사하는 정부의 국무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보다 정상적인 형태의 최고지도자직에 논란없이 올라 권력 승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정당성 흠결을 최소화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당대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7차 당대회(2016년 5월 6일~9일)를 36년 만에 부활시켰고, 당대회를 통해 로동당 위원장직을 신설했다. 또 2개월여 후인 같은 해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입법부: 우리의 국회)에서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개편, 국무위원장에 오르게 된다.

김정은은 이후 당 규약에 규정된 대로 5년마다 당대회를 열고 있다. 권력 승계, 또는 권력 운용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각종 절차적 정당성의 흠결을 해소하기 위해 당대회를 활용하는 모습이다. 아버지 김정일이 총비서에 오를 때 뒤따른 절차적 흠결을 의식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7차 당대회를 통해 각종 권력을 확고히 하고, 체제를 안정화한 뒤인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마침내 당 총비서마저 부활시켜 자신이 추대된다.

앞서 김정은은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 총비서라는 직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8차 당대회에서 각급 당위원장과 부위원장직을 비서 및 부비서제로 환원시키면서 총비서 자리까지 되살렸고, 그 자리에 자신이 올라선 것이다.

그렇게 하여 김일성(1대)-김정일(2대)-김정은(3대)을 잇는 총비서 계보를 완성, 최고지도자의 연속성을 살렸다. 이어 김정은은 올해 열린 9차 당대회에서 총비서로 재추대되었다.

김정은의 딸 주애가 훗날 후계를 잇게 된다면, 주애가 제4대 조선로동당 총비서에 오를 때 승계가 완성된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