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경력 40년이 넘은 노장의사는 오늘도 진료를 본다. 해방직후 의과대학을 입학했고 군대에서 10년, 대학교수로 7년을 비롯해 개원 후 지금까지 의료인생은 4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를 찾는 환자 때문이다. 백발의 머리와 부드럽지만 강직한 목소리는 환자들에게 저절로 신뢰감을 갖게 한다.

노장은 1969년 어려운 시절 자신의 이름을 걸고 최규식내과로 시작해 1971년 현재 인사동 위치로 자리를 옮겼으며, 이후 1992년 1월 법인으로 전환하여 의료법인 해정의료재단을 설립했다. 국내에서 내과로는 최고의 시설을 갖추려 노력 했다는 최규식 박사는 인터뷰 중 환자들의 ‘고통’을 여러 번 거론했다. 그가 의사가 되고자 했던 것도 의사로서 진료를 보면서도 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핵심이었다. 의사로서 봉사정신이 중심이었기에 수십 년간 키운 병원을 과감히 비영리재단으로 돌릴 수 있었다.

소화기질환환자 ‘고통’ 덜어주고 싶어 전문병원 설립해

그가 젊은 시절 우리나라는 배고픈 나라였다. 그래서인지 내과와 관련된 질환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흔한 질병이 됐다. 유독 맵고 짠 음식을 즐기는 우리나라의 식습관도 영향이 있었다. 소화기병 환자들은 많았지만 이를 제대로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 적다는 사실이 그로 하여금 내과 전문병원을 설립한 배경이 됐다. 국내 소화기질환 검사 최고의 병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많은 고통을 덜어주고자 했던 그의 애민과 봉사정신에서 시작됐다. 한 사람의 뜻있는 의식은 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생명에 영향을 미쳤다.

최규식 박사는 해정의료재단을 이끌어오면서 신속, 친절, 최선을 강조했다. 그와 함께 오랜 시간을 같이해온 직원들에겐 이젠 습관적인 의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병원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환자들을 위한 의료서비스에서 신속함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아픔과 고통으로 내원하는 환자들에게 빠르고 정확한 진료를 기본으로 검진결과를 24시간 내에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선진형 의료시스템인 처방전달시스템(OSC)과 영상저장 전송시스템(FULL PACS)을 구축했기에 가능했다. 최규식 박사는 의학대학 졸업식에서 들었던 전 세브란스 학장이었던 김명선 박사의 축사를 잊지 않는다. ‘가는 곳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라’는 졸업축사는 그가 지금까지 ‘최선’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를 세우게 만들었다.

건강시대위해 예방은 필수 검진센터 강화해

해정의료재단은 오랜 된 역사를 가진 만큼 주치의가 된 가족들도 많다. 아버지와 손자까지 3대째 병원을 찾는 경우도 흔하다. 위장병은 초기에 치료하면 완치 확률이 높지만 대수롭게 생각지 않고 방치할 때 만성질환으로 이어진다. 만성질환으로 이어진 경우 단순히 식습관 개선을 하는 것만으로 건강을 지키는 것엔 한계가 있어 반드시 전문의 상담과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위암전문병원은 많지만 위염이나 소화불량을 전문으로 다루는 병원이 드문 것도 역할을 하게 했다.

69년부터 진행한 위 내시경 검사만 50만여 건이 넘는 지금으로서 최 박사가 강조하는 것은 ‘예방’이다. 그는 아프다 오면 늦는다는 것을 강조하며 6개월에 한 번씩 검진해야한다 조언했다. 단순한 의사로서의 조언이기보다 지금까지 건강관리를 하는 노장의 노하우를 알려주듯 술 담배를 끊을 것도 덧붙였다.

건강시대를 위해 예방은 필수다. 최 박사가 해정의료재단 내 검진센터를 강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최 이사장은 아파서 오는 시대이기보다 찾아서 진료하는 시대를 통해 건강관리시대가 된 것이 보람이라 언급했다. 최규식 박사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건강을 위해 최선의 진료와 봉사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열정을 드러냈다.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