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383년 겨울. 부견(苻堅)이 이끄는 전진(前秦)의 대군이 8만 병력의 동진(東晉)과 비수(淝水)를 사이에 두고 맞붙었다. 전진은 80만 명이 넘는 대군을 동원했다고 전해진다.

앞선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 동진군이 “강을 건너갈 테니 정면으로 붙어 보자”며 전진군에게 조금 뒤로 물러나 달라고 요청했다. 부견은 월등히 많은 병력으로 정면승부를 벌이면 절대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동진군이 강을 절반쯤 건넜을 때 기병으로 공격할 생각이었다. 전진군에 뒤로 물러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진군이 뒤로 움직일 때 동진의 장수였다가 전진에 포로로 잡힌 주서(朱序)가 진영 뒤편에서 “전진 군이 패했다”고 외쳤다. 전략적으로 후퇴하던 전진군은 정말 동진군에 패한 줄 알고 혼란에 빠졌다.

공포는 쉽게 전파된다. 숫자가 많으면 통제가 어렵다. 고대 전투에서 일단 대열이 흐트러지면 아무리 병력이 많아도 쉽게 무너진다. 전진은 궤멸적 피해를 입었다. 패전 이후 내부 반란이 잇따랐고, 부견은 2년 뒤인 385년 부하였던 후진(後秦)의 요장(姚萇)에게 붙잡혀 살해됐다. 전진도 394년 멸망했다.

※ 챗GPT의 도움으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 챗GPT의 도움으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트럼프가 미워서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을 응원한 이들이 많을 듯 싶다. 그런데 다수가 바라던(?) 선거 결과가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민주당이 여론을 수용해 만든 AI 규제 공약 때문이다. 시장은 그동안 만들어진 AI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공포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AI 산업이 무너질 만큼 상황이 달라진 것일까? 민주당이 AI를 규제하고 데이터센터 건설을 막을 것이란 ‘공포’가 ‘공황(panic)’을 부르는 모양새가 됐다.

투자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섣부른 예상이다. 필요한 건 정확한 상황 판단에 바탕을 둔 예측이고, 중요한 건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다.

이번 중간선거 결과의 의미와 AI 규제 변수, 수급 상황 그리고 투자전략을 요약해봤다.

민주당의 압승(?)보다 트럼프의 참패

2년 전 트럼프가 대선을 크게 이긴 이유를 거칠게 요약하면 민주당의 ‘경제 무능’이다. 이번 중간선거는 민주당의 압승이지만, 더 정확히는 트럼프의 참패다. 민주당이 뭔가를 잘한 게 아니다. 공화당의 실패 탓이 크다. 민주당 집권기에도 재정적자는 문제였다. 인플레이션 대응 시기를 놓친 것도 바이든 정부 때다.

인기 영합주의(populism)는 경제에 위험 변수가 된 경우가 많다. 영국은 국민투표로 유럽연합(EU)을 탈퇴했다. 독일은 원전을 포기하고 러시아산 에너지에 의존하다 전기차 전환에 실패했고 인플레이션까지 겪고 있다. 친환경, 공정을 추구해 각종 규제를 강화하던 유럽은 기술에서는 미국, 제조업 경쟁력에서는 중국에 뒤처지고 있다.

미국은 대통령 권한이 강하다. 거부권으로 입법을 막을 수 있다. 민주당이 아무리 상·하원을 장악해도 행정권을 가진 트럼프보다 강하다고 할 수는 없다. 관세와 전쟁을 포함한 외교는 특히 그렇다. 예산권은 의회의 가장 큰 권한이지만 자칫 남용하다 경제에 피해를 입히면 2년 뒤 대선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데이터센터 무리한 규제는 자승자박 될 수

데이터센터는 미국 경제의 핵심 성장동력이다. 역사상 손꼽히는 규모의 투자로, 건설과 전력설비 등 광범위한 산업에서 수요와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최근 연방준비제도(Fed)는 AI가 가져올 생산성 혁신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이 장악하게 될 의회와 주정부가 AI 성장 엔진을 훼손시키고도 과연 2년 후 대선에서 승리할까?

하이퍼스케일러 대부분이 빅테크다. 미국 증시에서 가장 큰 비중을 갖는다. 반도체 등 AI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업들의 증시 비중도 높다. 미국 가계는 주식 비중이 크다. 주가가 하락하면 소비가 위축돼 경제에 치명적이다. 물가 만큼이나 민감한 지표다. 트럼프는 5일 증시 폭락 직후 “401K(연금계좌)가 훼손됐다. 민주당 탓이다”라고 꼬집었다.

※ 챗GPT 도움으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 챗GPT 도움으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민주·공화당 모두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중국이 AI 분야에서 미국에 가장 열세인 게 ‘컴퓨팅 파워’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을 독려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어서 민원과 여론 반대의 부담도 적다. 전력 사정도 미국보다 훨씬 여유롭고 지역 간 송전망(grid) 건설에 따른 저항도 상대적으로 적다. 미국이 데이터센터 건설을 지연시키고 AI 규제를 강화하면 가장 득을 보는 쪽은 중국이다.

미국의 진짜 여론을 알아야 한다. 데이터센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부작용’에 대한 보완 요구일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정부와 하이퍼스케일러의 데이터센터 건설 계약 내용은 비공개로 유지됐다. 계약 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그 과정에서 주민과의 소통이 확대된다면 부정적 여론이 완화될 수 있다.

AI 투자, 적당한 속도 조절은 증시 수급 돌파구 될 수

AI 혁명 전 미국 경제는 제조업이 아닌 소비 중심이었다. 투자도 주로 소프트웨어에 집중됐다. 기업들이 번 돈은 가계를 거쳐 다시 금융시장으로 돌아왔다. 설비투자 같은 고정비 부담이 적은 미국 주요 기업들은 거대한 잉여현금흐름(FCF)을 주주환원에 활용했다. 주주환원 역시 금융시장을 통해 이뤄진다. 한마디로 금융시장에 돈이 잘 돌았다.

※ 챗GPT 도움으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 챗GPT 도움으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AI가 등장하면서 미국의 간판기업들은 데이터센터 같은 대규모 유형자산 투자를 늘렸다. 반도체도 전력도 용수도 모두 부족했다. 부족한 걸 얻으려면 비싼 값으로 사야 한다.돈을 많이 써야 한다. 이른바 빅테크들이 벌어들인 막대한 돈이 금융시장이 아니라 실물경제, 또는 해외로 나가게 됐다. 번 돈으로도 모자라 꾼 돈으로 투자하더니, 최근에는 주식을 발행해 새 돈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금융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주식과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끌어다 쓰는 구조가 됐다.

데이터센터 건설 속도가 조절되면 금융시장에서 조달해야 할 자금도 줄어들어 시장의 수급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인허가 등의 문제로 공사기간이 길어지고 투자금액이 늘어나면 자금력이 약한 네오클라우드(neo-cloud)부터 경영이 어려워지기 쉽다. 반대로 이미 데이터센터를 보유한 빅테크들은 공급 부족을 틈타 서비스 가격을 높일 환경이 조성된다. 빅테크가 네오클라우드 자산을 인수하는 구조조정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싸게 산다면 빅테크의 시장 지배력을 더 높아질 수 있다.

당장은 美 국채, 전쟁 끝나면 美 주식

AI 규제와 재정, 전쟁 등 중간선거를 계기로 부각된 미국 경제의 숙제들이 너무 많다. 현재로서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위험(risk)보다는 불확실성(uncertainty)의 상황이다. 불확실성이 큰 만큼 당장은 위험자산보다 안전자산의 상대적 매력이 높아 보인다. 마침 채권 대비 주식의 상대적 매력(yield gap)도 낮다. 신용위험이 가장 낮은 자산 가운데 하나인 미국 1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은 연 4.8% 수준이다. 금리가 오르면 가격손실을 볼 수 있지만, 금리가 하락하면 시세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보여왔던 미국 증시가 최근 높은 변동성을 보이는 것은 펀더멘털보다는 수급이 꼬인 상황에서 헤지펀드와 파생상품 등의 포지션까지 청산된 탓이 크다. AI 투자 압력이 완화되고, 투자자들의 포지션이 재정비되면 변동성은 낮아질 수 있다.

중요한 건 금리다. 하이퍼스케일러의 자금조달이 줄면 국채금리를 낮추는 유인이 된다. 2년 후 대선을 겨냥한다면 민주·공화당 모두 인플레이션 진정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로 인해 연준의 금리인상 기조가 멈추거나 지연된다면 주식시장에는 호재다.

반도체 착시 벗어나야…‘국장’은 자동차가 중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록적 실적은 많이 팔아서(Q)가 아니라 값이 높아져서(P)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반도체 수출물량은 전년 대비 30.5% 증가했지만 수출가격은 182.1% 급등했다. 수요가 약해지면 값도 쉽게 하락하는 구조다. Q와 P가 함께 성장해야 ‘칼자루’를 쥘 수 있다. 지금은 ‘칼날’을 쥔 처지다.

삼전·닉스의 기술 및 생산 경쟁력은 반도체 업계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래도 지배구조가 불투명하고 주주환원은 인색하다. 더 생산한 성과가 아니라 값만 올라서 난 이익인데 직원들에게 일정 비율을 정해 천문학적 성과급을 챙겨주는 노사관계도 글로벌 기준에서는 낯설다. 아주 냉정히 보면, 증시에서 어이없는 수준의 가치밖에 인정받지 못할 이유들이 수두룩하다.

사실 국장이 뜨려면 반도체보다 전후방 연관효과가 더 큰 산업, 대표적으로 자동차가 좋아야 한다.

한국은행의 2023년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특정 산업의 수요 증가가 다른 산업의 생산을 얼마나 유발하는지 보여주는 영향력계수는 자동차가 1.335, 반도체는 0.793이다. 고용유발계수도 생산액 10억원당 자동차 1.0명, 반도체 0.7명이다.

그런데 요즘 자동차는 사면초가다. 전기차는 중국에 밀리고, 자율주행차는 미국에 치이고 있다. 하이브리드에서도 일본에 열세다. 반도체 흑자로 원화 강세까지 겹쳤다.

올 상반기 코스피 랠리에도 자동차주의 역할이 컸다. 현대차 주가는 지난해 말 대비 66.9%, 기아는 13.3% 상승했다. 본업 보다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피지컬 AI 사업에 대한 기대가 컸다. ‘진짜’ 자동차가 좋아져야 국내 증시 상승탄력이 높아질 수 있다.

반도체 호황에 기대 공격적으로 편성된 내년 예산안도 걱정이다. 정부는 2027년 총지출을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2.8% 늘리기로 했다. 국세수입은 반도체 호황에 따른 법인세 증가 등을 반영해 194조2000억원 늘어난 584조4000억원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효과의 쏠림이 가져온 경제 왜곡을 정부가 과연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을까? 우리 현실을 보면 정치인은 자랑에만 능하고, 관료는 그들의 비위 맞추기데 익숙하다. 반도체 호황이 둔화되면 세수 전망부터 흔들릴 게 뻔하다. 한번 늘린 예산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 반도체 호황으로 장밋빛 미래가 열린 듯 흥분하던 분들(?)이 자꾸 떠오른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