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패배 이틀 뒤 관세정책 고수 천명
美 증시 폭락엔 “멍청한 민주당 탓”
‘레임덕→앵그리덕’ 폭주 우려 현실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간선거 참패 이틀 뒤인 5일(현지시간) “관세를 없애면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으면 관세가 최고 300%가 될 것”이라 말했다. 관세 정책은 대통령 재량으로 반드시 고수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중간선거 참패 이후 대통령 재량권이 많은 외교·통상·안보 분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폭주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선거에서 압승한 민주당은 다음해부터 트럼프 행정부와 일가에 대한 전방위 조사를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행정부 각료들 사이에서 ‘침몰하는 트럼프호(號)’를 탈출하려는 행렬도 시작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앞으로 2년간 행정명령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정치적 유산 보존을 위해 어떤 계획이 있나’라는 질문을 받고 “우리는 많은 일을 할 것이다. 1주일간, 2주일간 많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준비하는 것이 많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외국 기업들이 미국 내에 3000여개의 공장과 생산시설을 건설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내가 지금 관세를 없앤다면 이 공장들은 전부 건설이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장 건설 이유의) 99%는 그러지 않으면 50%, 100%, 150%, 250%의 관세를 내야하기 때문”이라면서 “건설을 시작하면, 그리고 가동을 시작하면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이어갔다.
그는 관세를 중단하면 “전국에 짓다 만 공장들이 생길 것이고 중국과 일본, 한국, 필리핀에서 제품을 들여오게 될 것”이라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역점 사업 중 하나인 ‘미국 제조업을 위대하게’ 정책이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 역설했다. 그는 또 기업들이 공장을 짓고 가동을 시작하면 관세를 낼 필요가 없을뿐더러 물가도 크게 내려갈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관세를 없애자는 주장에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중간선거에서 참패 이틀 후이자, 패배 원인이 이란 전쟁으로 인한 고물가라는 점을 인정한 다음날 나온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관세 300%’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과장된 표현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추가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발언은 중간선거 패배와 무관하게 관세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향후 통상이나 외교·안보 분야에서 독주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앞서 정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 참패로 국내에서의 정치적 입지가 약화하면서, 대통령 재량권이 큰 외교·안보나 통상 분야에서 폭주하는 ‘매드독(광견)’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트럼프가 ‘마이웨이’를 고집할 가능성을 높이면서, 트럼프 행정부·측근에 대한 조사와 입법으로 이를 견제할 민주당과의 갈등도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이날 차기 연방 하원의장이 유력한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하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자회사처럼 기능하던 시절은 끝났다”라며 ‘트럼프 카르텔’을 겨냥한 조사를 예고했다고 보도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진보센터 포럼에서 “미국인들은 우리가 정부의 부패를 척결하기를 원한다”라 말하며 “트럼프가 주식시장에서 내부자 거래를 하는 동안 미국인들이 슈퍼마켓에서 무엇을 사고 무엇을 포기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다음해부터 상원에서는 국토안보·정부업무위원회, 재무위원회 등이, 하원에서는 감독·정부개혁위원회, 법사위원회, 천연자원위원회가 조사를 주도할 예정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의 결혼식 뒤풀이 비용을 러시아 사업가가 대줬다는 의혹부터 트럼프 주니어가 선임파트너로 있는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업체들에 대한 특혜 의혹 등이 조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특사로 활동해 온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외교 활동 지역에서 벌이는 사업과 관련한 의혹, 트럼프 일가의 사업체 ‘더 트럼프 오거니제이션’과 외국과의 거래,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주식 거래 등도 조사 대상으로 꼽았다.
국세청(IRS)이 트럼프 일가와 가족 사업체에 대해 세무조사를 중단한 것이나 백악관 연회장 건축 사업에 돈을 댄 기업들에 대한 특혜 의혹, 대통령 사면을 받기 위한 ‘사면 알선 사업’, 트럼프 거액 기부자들이 경쟁입찰 없이 정부 계약을 따낸 정황 등도 잠재적 조사 대상으로 거론했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비위 의혹뿐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과 대(對)이란 전쟁 등 정책 사안에 관한 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백악관 고위 참모 스티븐 밀러, 트럼프 대통령의 국경정책 총괄 책임자 톰 호먼, 마크웨인 멀린 국토안보부 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등이 의회에 소환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뉴욕증시가 일제히 폭락한 것도 민주당 탓으로 돌렸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선거 결과에 따라 주식시장은 역사상 최악의 날 중 하나를 겪었다”라며 “정말 지켜보기에 슬픈 일이었다”고 게시했다. 이어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수준에 도달하는 데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 그래서 여러분의 ‘401k’(미국인 퇴직연금)도 떨어졌다”라며 “기억하라, 이건 공화당이 아닌 ‘더모크랫’(Dumocrat·멍청한 민주당원)들 탓”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트럼프호(號)가 동력을 잃는 조짐에 재빨리 탈출하려는 시도가 시작됐다는 전망도 나왔다. 처음 거론된 사례는 영국 인디펜던트지가 5일 보도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사임설이다.
인디펜던트지에 소식을 전한 루비오 장관의 측근은 “루비오가 사임하고 트럼프 행정부를 떠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일”이라고 전했다. 그는 “루비오는 현재 공화당 대선후보 선두주자로, JD 밴스 부통령을 명백히 앞서 있다”라고 주장하며 “국무장관직을 수행하면서는 출마할 수 없고 이 행정부와 엮여있는 건 대선가도에 악영향을 미칠 뿐”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공화당 소식통도 이 매체에 “루비오는 중간선거 후에 사라질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 각료 중) 네다섯명 정도가 도망칠 것”이라고 전했다. 백악관과 국무부 모두 이 보도에 대해 “근거 없는 가짜뉴스”라고 일축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는 시도는 루비오 뿐 아니라 다른 각료들에게서도 확인된다.
루비오 장관의 강력한 경쟁자인 밴스 부통령도 발빠르게 트럼프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밴스 부통령은 참패 다음날 패배의 원인을 이란 전쟁 탓으로 돌리는 장문의 글을 SNS에 공개했다. 게시글에는 자신은 이란 전쟁에 반대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끝내 밀어붙여 참패의 수모를 자초했고 이제 이란 전쟁은 종식해야 한다는 뉘앙스를 담았다. 당내 대권주자로서의 기반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이란 전쟁에 대한 책임을 잘라낸 것이다.
이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밴스 부통령이 중요한 시기에 상관(트럼프 대통령)을 약화시키며 배에서 뛰어내려 대선 출마 준비에 들어갔다는 내용의 사설을 실었다.
최고위급의 각료가 아닌 행정부 인사들 중에서는 법무부 민권국의 하르밋 딜론 차관보가 이날 사임했다. 중간선거 이후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의 사임 사례는 이틀만에 처음 나왔다.
딜론 차관보는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을 없애려는 트럼프 행정부 기조에 맞춰, 인종차별 철폐와 시민권 확대에 앞장서 온 법무부 민권국의 역할을 크게 축소하는데 앞장섰다. 특히 대학의 다양성 정책을 겨냥해 조사에 착수하는 한편, 이번 중간선거에는 사상 최대의 투표감시 활동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민권국 인력의 4분의 3이 조직을 떠나기도 했다. 민주당이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해 다음해부터 각종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벼르는 만큼, 딜론 차관보도 이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도현정 기자
kate01@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