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그림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림 속 이슈, 명화에 스민 사연, 예술에 서려 있는 인간의 고민과 욕망을 들여다봅니다. 한 점의 캔버스로 시작해, 액자 밖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니콜라이 카사트킨, 누구? 1897, 캔버스에 유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bg-blog.ru,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니콜라이 카사트킨, 누구? 1897, 캔버스에 유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bg-blog.ru,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누구?”

남편이 묻는다. “내 아이는 아니고…. 누구냐고 물었는데?” 재차 추궁한다. 화폭의 배경은 러시아 제국. 남편은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다. 작품이 그려진 해는 1897년. 그 무렵 제국의 통상 복무 기간은 4~5년 안팎이었다. 그는 전쟁을 견뎠다. 전장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드디어 꿈에서도 그리던 고향 길에 오를 수 있었다. 익숙한 문을 열었다. 보고싶던 아내를 마주했다. 그런데, 아내 곁에는 평생 본 적 없는 꼬마도 있었다. 그것은 수백번 꿈을 꿨지만, 그 꿈 속에서 단 한 번도 그리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남편은 눈에 힘을 준다.

아내의 치마에 얼굴을 댄 소년. 불안한 듯 눈을 내리고, 작은 손으로 허벅지를 붙든 그 아이. 녀석은… 나를 닮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아무리 봐도 네 살은 되지 않아보였다. 그렇다는 건?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숙일 뿐이다.

이들은 하층민 부부로 보인다.

떠난 남편의 삶도 물론 여의치 않았겠지만, 남겨진 아내의 삶 또한 결코 녹록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간은 비바람이 불어도 착실하게 흘러간다. 인생은 폭풍우 속에서도 먹고, 입고, 잘 곳을 탐욕스럽게 요구한다. 집의 장식장 위에는 금속 찻주전자인 사모바르가 보인다. 소통과 환대를 상징하는 이 소품은 차갑게 식어 있다. 때가 탈 만큼 낡은 모습이다. 지난 4~5년, 반쪽짜리가 된 집안에 온기가 깃들었던 적은 없었으리라.

이런 가운데, 아내가 어디 편한 일을 했겠는가.

돈 없고, 가진 것 없고, 이제는 남편까지 없어진 그녀에게 주어진 일이라곤 뻔했을 것이다. 그렇게 낮동안 흙먼지에 푹 젖었다면, 밤에는 막막한 미래를 뒤집어 썼을 터였다. 동네의 비겁한 몇몇 사내들은 그런 그녀를 표적으로 삼지 않았을까. 공포와 불안을 자극하고, 많은 순간 강요와 협박으로 몸과 마음의 빗장 풀기를 요구했을 것이다. 그림 속 장면은, 아마도 이에 따른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시선 아래에서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 세 명의 등장인물 모두가 피해자다. 희생양이다.

니콜라이 카사트킨, 누구?(일부 확대) 1897, 캔버스에 유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bg-blog.ru,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니콜라이 카사트킨, 누구?(일부 확대) 1897, 캔버스에 유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bg-blog.ru,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니콜라이 카사트킨, 누구?(일부 확대) 1897, 캔버스에 유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bg-blog.ru,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니콜라이 카사트킨, 누구?(일부 확대) 1897, 캔버스에 유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bg-blog.ru,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화가도 생각할 거리를 화폭 곳곳 심었다.

특히나 아내의 흰 옷. 이는 그녀 또한 무고한 피해자임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구겨진 채 마치 ‘뚝뚝 흐르는 듯’ 걸려있는 붉은 천은 그간 그녀가 겪어야 한 모욕을 알리는 듯하다. 넘어간 의자와 하얀 가루(아마도 소금)을 쏟아내며 엎어진 통은 당장의 급박함을 알리는 한편, 지난 세월 엉망으로 짓밟힌 그녀의 심리를 대변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아울러 그림이 그려진 해, 1897년.

때마침 그 무렵 러시아 제국에선 사생아(혼외자) 문제가 공론화돼 논쟁으로 번지고 있었다. 이들, 그리고 이들의 보호자에게 어떠한 법적 권리를 줄 수 있는지를 따지고 검토하는 시간도 있었다.

남편도 알고 있지 않을까. 아내의 지난 세월을. 그러니까 묻는 게 아닐까 한다.

다른 말도 아닌 누구냐는 물음부터 꺼낸 까닭. 여기에 대해선 그녀를 비난하는 투의 “왜(Why) 그런 짓을 했느냐”가 아닌, “누가(Who) 당신에게 그런 짓을 했느냐”는 물음이라는 해석이 이어진다. 남편의 분노는 아내가 아닌 그 비겁한 난봉꾼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그녀를 지켜주고, 이름 모를 그 작자를 응징하기 위해 질문을 건네고 있다는 의견이다.

이 좁은 방은 세 가지의 각기 다른 비극으로 가득 차고 말았다. 바깥은 어둡다. 그래서 더 서글프기만 하다.

‘독기 가득’ 눈빛…“더 사랑해줄 수 있는데” 질투심에 벌인 최악의 짓[명화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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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덜 알려진 희귀 명화를 읽습니다. 아름다운 작품과 사연 있는 예술품을 찾아봅니다. 그렇게 1000점을 차곡차곡 수집합니다. [기자 구독]으로 이 과정을 함께 해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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