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증권업계는 브로커리지 수익 증가와 기업금융(IB) 부문의 약진에 힘입어 사상 유례없는 ‘역대급 실적’을 달성하고 있다. 그러나 축배의 이면에는 고물가·고금리 장기화와 글로벌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고통받고 있는 개인 투자자들의 희생이 이면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빚을 내어 투자하는 ‘신용융자’ 규모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달 금리 상승은 투자자들의 이자 부담을 임계점까지 가중시키고 있다. 나아가 주가 급락 시 대규모 반대매매를 촉발해 시장 전체의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경기순응성(Procyclicality)의 뇌관으로 작용할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선제적인 시스템 리스크 관리와 투자자 보호를 지속적으로 촉구해 왔다. 지난 6월 ‘시장 변동성 확대에 따른 리스크 관리 간담회’에서도 당국은 신용융자 등과 관련해 투자자 보호를 당부한 바 있다. 단순한 행정적 권고 차원을 넘어, 레버리지 투자가 자본시장 전반에 걸친 리스크로 전이되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하자는 절박한 메시지였다.
다행스럽게도 증권업계 역시 이러한 당국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화답했다. 지난 9월, 금융투자협회를 중심으로 업계는 「신용융자 자율관리 강화방안」을 시행한다고 발표하며 시장 안정화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어 금융당국의 주재로 열린 증권회사 CEO 간담회에서는 업계의 ‘책임감 있는 투자자 보호’가 다시 강조됐다. 금융감독원장은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증권사들이 눈앞의 이익보다 핵심 중개자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과 신뢰 구축의 무게를 뼈에 새기도록 역설했다.
이런 확고한 원칙은 긍정적인 시장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다수 주요 증권사들이 자율적으로 먼저 나서 매도대금담보대출 이자율을 인하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과거 규제에 떠밀려 수동적으로 대응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업계 스스로 투자자와 상생을 도모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다.
증권업계가 진정한 선진 금융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이자 수익이나 수수료에 매몰되는 ‘단기 성과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본시장 발전은 시장 참여자 간의 굳건한 신뢰 없이 요원하다. 개인투자자 신용융자 같은 서비스는 투자자 손실이 증권사 건전성 훼손으로 직결될 수 있는 만큼, 기계적인 담보 비율 관리를 넘어 금융소비자의 위험 인지도를 높이는 사전적 예방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 무리한 ‘빚투’ 대신 감당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건전한 투자를 유도하는 자본시장의 ‘문지기(Gatekeeper)’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증권업계가 거둔 역대급 실적은 단지 금융회사의 뛰어난 영업력만으로 창출된 것이 아니다. 우리 자본시장의 미래를 믿고 자금을 예탁한 수많은 투자자들의 피땀방울이 모인 결과물이다. 증권업계가 수익 우선주의라는 꼬리표를 떼고, 과실을 투자자와 나누며 시장의 든든한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려는 행보가 다행스럽다. 자율적인 금리 인하라는 작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 향후 대한민국 자본시장을 보다 성숙하고 굳건하게 만드는 상생 금융의 확고한 이정표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 본다.
이후록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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