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와 경영권 관련 전문가 연구모임인 ‘C&G(Control & Governance)포럼’(회장 김민기 카이스트 교수)이 지난 12일 ‘글로벌 AI기업들의 대규모 수주 전략: 성과 연동 워런트를 통한 지배구조 유지와 성장 동력 확보’를 주제로 정기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100억 달러 이상 규모의 대형 AI 칩 및 컴퓨팅 공급계약에서 활용되는 구매연동 워런트(신주인수권) 사례를 살펴보고, 해당 계약 구조가 기업 지배구조와 기존 주주 권리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행사에는 발제를 맡은 정승환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를 비롯해 김민기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 김희경 법무법인 도영 대표변호사, 안성진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등이 참석했다.
정승환 교수는 대규모 AI 칩·컴퓨팅 공급계약이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고 공급 준비 기간이 길며, 향후 수요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공급자와 고객 모두 계약 상대방의 약속이 실제로 이행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AMD와 아카마이(Akamai), 세레브라스(Cerebras) 등의 사례를 소개하며 “최근 계약들을 보면 공급자가 고객에게 부여한 주식 권리는 주로 고객의 구매 물량이나 약정액에 따라 단계적으로 권리가 확정(vesting)되는 구조를 띤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매량에 연동된 주식 권리는 거래 당사자 간 장기적인 협력을 유도하는 장치인 동시에, 회계상 매출에서 차감되는 가격 조건의 일종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이러한 구조는 운영관리의 공급계약 도구로 해석할 수 있지만, 기존 주주와 이사회 관점에서는 희석, 공시, 회계, 의결권이라는 지배구조 쟁점과도 연결된다”며 “특히 무의결권 주식 활용이나 지배권 이전 시 해지권 등 공급 관계를 보호하는 조항들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AI 인프라 분야의 대규모 투자와 공급계약에 지분 관련 조건이 결합되는 거래 방식이 자본시장과 기업 경영권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의견이 오갔다.
김희경 변호사는 아카마이와 앤트로픽 간 계약 사례를 언급하며 “아카마이-앤트로픽 사례에서 공급사의 지배권이 경쟁사로 넘어가면 고객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제품과 워런트를 모두 내주는 공급사가 회사 매각의 선택지까지 제한당하는 것이어서 공급사 주주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위험 요소”라고 지적했다.
안성진 교수는 대규모 워런트 부여에 따른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 문제를 짚었다. 안 교수는 “대규모 워런트 부여는 명백한 지분 희석을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기존 주주들이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과 주가 상승을 위해 이를 기꺼이 승인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당장의 단기 수익에 연연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미래 가치에 투자하는 자본시장의 성숙한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딜”이라고 평가했다.
유효상 원장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워런트를 활용하면서도 경영권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한 계약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유 원장은 “글로벌 빅테크들은 대규모 워런트를 마케팅에 활발히 활용하면서도, 경영권 변동 위험을 막기 위해 철저히 ‘무의결권’ 신주를 발행하는 선진적인 딜 구조를 짜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처럼 혁신적인 딜과 유연한 경영권 방어를 동시에 지원할 수 있도록 무의결권주나 차등의결권 제도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고 제언했다.
김민기 교수는 글로벌 AI 기업들의 초대형 워런트 계약이 국내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보면서도, 국내 기업 간 전략적 제휴 과정에서 참고할 만한 요소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글로벌 빅테크의 초대형 워런트 계약이 국내에서 같은 형태로 재현될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국내 기업 간 전략적 제휴에서도 협력의 기대이익뿐 아니라 각자의 이행 의무와 위험 분담 방식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시사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급사의 선행투자에 상응하는 고객사의 구매 약정과 비용 분담을 명확히 하고, 실제 계약 이행과 성과에 따라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수요 감소나 약속 불이행, 경쟁관계 또는 지배권의 변화로 협력이 축소·중단될 경우, 그 원인과 책임에 따라 미회수 투자비용을 어떻게 분담할지 사전에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AI 산업의 성장과 함께 대규모 자본투자와 장기 공급계약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특히 공급계약과 지분 관련 조건이 결합된 거래가 확대될 가능성을 고려해 기존 주주의 권리와 기업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kim3956@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