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일본에서 근로시간이 다시 경제의 화두가 됐다. 일본 기업들은 부족한 인력에 대응하기 위해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한편으로 장시간 노동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이러한 가운데 9월부터 일본 정부는 근로시간 제도의 운용 방식을 변경했다. 본래 근로시간을 월 45시간 이내로 줄이도록 지도해 왔으나, 노사가 특별조항에 합의할 경우 일정 조건 아래 월 45시간을 넘는 연장근로를 허용한 것이다. 연장근로의 법정 상한을 변경하지 않으면서도, 기존 제도를 기업 현장 사정에 맞춰 운용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높였다.
이번 조정은 인력난을 겪는 기업 현장의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물론 기업이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하려는 것과 근로자의 입장에는 견해차가 존재한다. 도쿄대 사회과학연구소의 2026년 패널조사에 따르면 근로시간을 늘리고 싶다는 응답은 남성 3%, 여성 6%에 그친 반면, 줄이고 싶다는 응답은 남성 44%, 여성 32%에 달했다.
제도의 변경에도 일본 기업에는 여전히 과제가 남아 있다. 현장에 맞는 근로시간 운용이 필요하지만, 노동력의 공백을 기존 인력의 근로 시간 증가만으로 메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이 해온 일 중 무엇을 줄이고, 어떤 방식으로 바꿀지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자동화가 뒤처진다는 일본에서도 최근 들어 업무 자동화가 사업 전(全) 과정을 연결하는 방향으로 확산되고 있다. AI를 활용한 주문 승인 및 회계시스템 연동, 고용 및 연말정산의 온라인화 등이다. 생성형 AI도 회의록과 제안서, 설계 및 제품 사양서 작성 등에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파나소닉 커넥트의 경우 2025년도 생성형 AI 활용으로 총근로시간의 3.4%에 해당하는 78만8000시간을 절감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한국에서 디지털 전환이 편의와 효율의 언어였다면, 지금 일본에서는 노동력 부족을 견디기 위한 생존의 언어가 되고 있다. 반복적인 입력과 확인은 시스템이 맡고 사람은 고객 응대, 판단, 숙련이 필요한 일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근로시간을 무리하게 늘리지 않으면서 현장의 부담은 덜고 운영 수준은 유지하려는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기업의 일본 진출 방식에도 시사점을 주고 있다. 제품, 가격, 신뢰도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해당 제품을 도입하면 고객사의 어떤 작업이 줄어드는지도 함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장비·부품은 설치·점검 시간을, 소프트웨어는 반복 업무와 오류를, 서비스는 운영과 사후관리 부담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새로운 경쟁력이 되는 것이다. 벌써 우리 중소기업 일부는 사람이 직접 확인·관리하던 업무를 어떻게 덜어줄 수 있는지를 해법으로 제시하며 일본 시장에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일본의 근로시간 논쟁은 근로시간을 얼마나 유연하게 활용할 것인가에서 시작됐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제품을 쓰면 고객의 어떤 일이 줄고, 사람은 무엇에 더 집중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는 기업이라면 일본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시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홍치의 한국무역협회 도쿄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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