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일 선임기자(국장) 자치광장]“구청장 조직 장악력, 새올 게시판부터 점검하라”...한 자치구 구정 보도, 구청장 당부말씀 직원 클릭수 고작 수십건 결국 2000여명 직원 중 20~30명 읽는다면 조직 장악력 문제 증거

AI가 만든 서울 세종로 일대 전경
AI가 만든 서울 세종로 일대 전경

[헤럴드경제=박종일 선임기자] 민선 9기가 출범한 지 벌써 100일이 넘었다.

아이로 치면 태어나 세상에 적응하기를 축하하는 의미 있는 기간이다.

특히 초선 구청장들에게 지난 100일은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일 것이다. ‘구청장은 3D 업종’, ‘철인 3종 경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구청장의 하루하루는 고단하다. 공익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각오 없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다.

그렇게 숨 가쁘게 달려온 100일. 이제 앞으로 4년간 추진할 공약과 구정 운영의 큰 줄기도 어느 정도 구체화됐을 것이다. 이제는 계획을 실천으로 옮길 때다.

하지만 지방정치는 결코 중앙정치 못지않게 어렵다. 좁은 지역사회 안에서 경쟁자와 반대 세력이 늘 지켜보고 있고, 구청장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하나가 직원들의 평가와 비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선출직 공직자에게는 그래서 겸손과 신중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다는 심정으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이런 서울 구청장들에게 꼭 한마디 권하고 싶다.

“청장님, 직원들의 아부에 속지 마십시오.”

구청장이 조직을 제대로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정책 방향과 역점 사업을 전 직원이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의외로 간단하다. 매일 발표되는 구정 보도자료와 구청장 당부 말씀을 직원들이 제대로 읽도록 하는 것이다.

서울 자치구 공무원들이 업무에 활용하는 새올행정시스템 게시판에 올라오는 구정 보도자료와 구청장 당부 말씀을 과연 몇 명이나 꼼꼼히 읽고 있을까.

구청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이 무엇인지, 어떤 정책을 통해 구민의 삶을 바꾸려 하는지 직원들이 모른다면 어떻게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조직을 만들 수 있겠는가.

특히 간부회의에 참석하는 간부들이 당일 주요 구정 보도자료조차 숙지하지 않고 회의장에 들어온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구청장이 강조하는 핵심 사업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무슨 논의를 하고 어떤 지시를 실행하겠다는 것인가.

구청 직원들 ‘구정 보도’ ‘구청장 당부’ 전체 읽고 숙지해야

기자가 지난 8일 서울 한 자치구 새올시스템에서 구정 보도와 구청장 당부 말씀 클릭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겨우 20~30건...해당 자치구 2000여명 직원 중 20~30명만 읽었다는 것은 과장급 이상 70명, 팀장급 240여명 등 300여명 중 10분의 1만 읽었다는 것이다.

한 자치구 간부는 “구청장의 주요 사업이 담긴 구정 보도 내용을 직원들이 제대로 읽지 않는다면 구청장이 조직을 장악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구청장의 당부 말씀 역시 마찬가지다. 직원들이 이를 읽지도, 실천하지도 않는다면 조직 내부의 소통과 업무 긴장감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구청장들은 정작 다른 곳에서 조직의 상태를 판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간부들은 구청장에게 얼마든지 듣기 좋은 말을 할 수 있다. “청장님, 정말 잘하고 계십니다.” “청장님 정책이 최고입니다.”

인사권과 예산권을 가진 구청장 앞에서 이런 말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칭찬과 아부가 곧 조직 장악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구청장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치켜세우는 간부가 아니라 정책을 정확히 이해하고 현장에서 실행하는 공무원이다.

직원들의 듣기 좋은 말에 취해 조직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착각한다면 구청장의 리더십은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직원들이 출근하면 새올행정시스템에 올라온 구정 보도자료와 구청장 당부 말씀을 확인하는 것을 일상적인 업무 습관으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단순히 게시물을 읽었는지 확인하는 데 그쳐서도 안 된다. 정책의 취지와 실행 과제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살펴야 한다.

간부회의에서도 방법은 있다. 구청장이 몇몇 과장에게 주요 구정 보도자료의 핵심 내용과 담당 부서의 후속 조치를 질문해 보는 것이다. 누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문책성 질문이 아니라, 구정의 방향이 조직 전체에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런 문화가 자리 잡으면 구청장의 정책은 구청장실에 머물지 않는다. 각 부서와 동주민센터로 이어지고, 현장에서 구민을 만나는 공무원들의 설명과 행동으로 나타난다.

가령 구민이 동주민센터 공무원에게 “구청장님이 구정을 잘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무조건 “잘하고 계십니다”라고 답하는 것과 다르다. 구청장이 추진하는 사업이 무엇이고, 그것이 주민 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구민이 구청장의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돕는 길이다.

물론 구정 보도자료를 읽는 것만으로 조직 장악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정책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 개진, 합리적인 인사, 공정한 업무 평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소통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구청장과 직원들이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움직이는 조직을 만드는 일이다. 구청장의 공약을 실천하는 공무원들이 정책의 취지와 방향을 공유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 있게 일할 때 구정도 성공할 수 있다.

구청장에게 필요한 것은 아부하는 직원이 아니라, 정책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직원이다.

민선 9기 출범 100일을 넘긴 지금, 구청장들은 주변의 칭찬보다 조직 내부의 실제 움직임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직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가 아니라, 구청장이 추진하는 일을 얼마나 이해하고 실천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직원들의 아부에 현혹돼 조직이 잘 돌아간다고 믿는 순간, 조직 기강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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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dream01@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