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전진숙 의원 주최 정책심포지엄

불법약물 넘어 처방약 오남용까지 논의

“위기 전 위험군 발견”…치료·재활 연계 모색

지난달 29일 국회도서관 소강당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네번째) 주최로 열린 ‘마약류 회색지대, 어떻게 발견하고 개입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정책심포지엄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강원대 중독과트라우마회복연구소 제공]
지난달 29일 국회도서관 소강당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네번째) 주최로 열린 ‘마약류 회색지대, 어떻게 발견하고 개입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정책심포지엄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강원대 중독과트라우마회복연구소 제공]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마약류 문제에 대한 대응을 적발과 처벌 이후가 아닌 ‘위험이 커지기 전’ 단계로 앞당겨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학교 밖 청소년과 군 복무자, 처방 약·일반의약품 오남용자처럼 기존 치료·사법 체계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마약류 회색지대’를 조기에 찾아내 치료와 재활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국회도서관 소강당에서 ‘마약류 회색지대, 어떻게 발견하고 개입할 것인가’를 주제로 정책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강원대학교와 국가위기관리학회, 강원대 중독과트라우마회복연구소가 행사를 공동 주관했다.

이번 행사는 마약류 사용 문제가 이미 시작됐지만 아직 범죄나 중독 위기 등으로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아 제도권 지원과 연결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문제가 심각해진 뒤 사법·의료체계가 개입하는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위험 신호를 누가, 어디에서 먼저 찾아낼 것인지가 주로 논의됐다.

기조발제를 맡은 김혜선 강원대 교수는 위험이 시작된 시점과 당사자가 실제 지원체계를 처음 만나는 시점 사이의 공백에 주목했다. 이를 ‘보이지 않는 시간’으로 규정하고, 조기에 이 간격을 좁힐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마약류 문제를 불법약물에만 한정해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의료 목적으로 합법적으로 처방되는 향정신성의약품이라도 오남용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사용 초기부터 이상 징후를 파악하고 치료·재활로 연결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현장에서는 대상별로 서로 다른 사각지대도 제시됐다. 김정희 삼척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학교 밖 청소년의 경우 단순히 약물의 종류나 복용 여부를 묻는 것만으로는 위험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며 실제 생활에서 약물을 어떤 방식과 목적으로 사용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인목 국군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군 조직 특유의 폐쇄성과 처벌 중심의 접근, 약물 문제에 대한 낙인 등을 조기 발견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았다. 전문인력과 관련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은 점도 치료로 연결하는 과정의 과제로 지적했다.

일반의약품이나 처방 약의 오남용 여부를 판단할 때는 약물 종류 자체보다 ‘사용 방식의 변화’를 살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부식 김해 리본하우스 원장은 사용량과 빈도가 늘어나거나 다른 약물로 옮겨가는 경우, 여러 약물을 함께 복용하는 경우, 약물을 사용하는 목적과 상황이 달라지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 국회도서관 소강당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네번째) 주최로 ‘마약류 회색지대, 어떻게 발견하고 개입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정책심포지엄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강원대 중독과트라우마회복연구소 제공]
지난달 29일 국회도서관 소강당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네번째) 주최로 ‘마약류 회색지대, 어떻게 발견하고 개입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정책심포지엄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강원대 중독과트라우마회복연구소 제공]

김현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팀장은 함께한걸음센터와 1342 용기한걸음센터 등 현재 운영되고 있는 사회재활 인프라를 소개했다. 사법 처리와 치료, 재활을 각각 분리하기보다 초기 단계부터 당사자가 지원기관과 실제로 접촉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어진 정책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발견 이후’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권금주 서울사이버대 교수가 좌장을 맡았으며 김선춘 InterTox 대표와 김호중 순천향대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앞서 발표에 참여한 현장 전문가들이 토론에 나섰다.

김 대표는 불법약물뿐 아니라 합법적인 처방 등 다양한 약물 노출 경로와 행동·이력을 종합적으로 살펴 위험군을 일찍 가려낼 수 있는 스크리닝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환자 상태와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 등을 토대로 119 신고나 응급실 이송이 필요한 시점을 판단하기 위한 최소 안전기준을 설명했다.

참석자들은 이와 함께 위험 신호를 최초로 발견할 주체를 어떻게 정할지, 겉으로 증상이 가벼워 보이는 환자의 실제 위험도를 어떻게 판단할지 등을 논의했다. 위험군을 찾아낸 이후 단순 상담 기관 안내에 그치지 않고 실제 치료와 재활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연계 체계 역시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전진숙 의원은 “마약류 문제는 적발된 이후에만 대응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학교 밖 청소년과 군 복무자, 합법적 약물 오남용자 등 기존 제도의 경계에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다 일찍 발견하고 필요한 지원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며 “오늘 현장에서 제기된 문제와 제안을 바탕으로 조기개입과 치료·재활의 공백을 줄일 수 있는 정책적·제도적 방안을 지속적으로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그동안 불법 마약류의 유통과 범죄를 차단하고, 적발된 사람에 대해서는 법과 제도에 따라 치료·재활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도움으로 연결하는 예방적이고 선제적인 정책으로 나아갈 때인 만큼, 이번 세미나가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심포지엄에서 던지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위험이 이미 시작된 사람을 우리는 언제 처음 만나고 있는가’였다”며 “회색지대는 특정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이 시작된 이후 위험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회복지원체계와 연결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위기가 온 뒤의 좋은 대응만큼, 위기 전에 회복으로 연결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poo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