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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없는 우주를 담은 윤이상 음악…어떻게 쉬울 수 있겠어요”
-지휘자 성시연 시선으로 본 윤이상
20세기 초반 현대음악 격변기
동서양 음악 접목, 새로운 길 제시
-집안의 반대 불구 늦은 나이 유학길
굴곡진 현대사, 음악으로 절절히 표현


올해는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탄생 100주년이다. 그는 ‘한국이 낳은 최고의 작곡가’, ‘현대음악의 거장’으로 불리지만 관객과의 거리는 가깝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치적 이유로 멀어졌던 것도 사실이고, 현대음악 자체가 난해하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이에 헤럴드경제는 독자에게 윤이상을 쉽게 소개해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 끝에 ‘지휘자의 시선으로 본 윤이상’을 기획했다. 작곡가의 의도를 고민하고 그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해 전달하는 사람이 지휘자라는 판단에서다. 성시연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단장 겸 상임지휘자가 선뜻 답했다. 젊은 여성 지휘자로 세계 클래식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그는 윤이상에 대해 ‘존경’을 표했다. 한편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통영국제음악당(8월 26일)과 예술의전당(9월 9일), 폴란드(9월 15일)와 베를린 뮤직 페스티벌(9월 17일)에서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그의 곡을 공연한다.

<편집자주>



“나는 서양음악을 배우고자 고군분투했습니다. 난 나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목표를 향해 왔으며 정의로움 또는 더 이상적인 음악을 추구해 왔습니다. 음악은 항상 나를 매료 시켰고, 나는 이상적이고 아름답고 더 강렬한 음악을 아직도 찾고 있습니다.”

작곡가 윤이상이 게르트 알브레히트와 독일방송 ‘3SAT’의 ‘해설이 있는 음악회’에서 한 말입니다. 두 손을 모으고 낮은 소리로 말하는 그를 보면서 그가 활동했던 당시를 잠시 생각해봅니다.

올해 작곡가 윤이상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헤럴드경제는 독자에게 윤이상을 쉽게 소개해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 끝에 ‘지휘자의 시선으로 본 윤이상’을 기획했다. 성시연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단장 겸 상임지휘자는 윤이상에 대해 ‘존경’을 표했다. [제공=경기도문화의전당]

1ㆍ2차 대전을 겪고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유럽의 작곡가들도 변화를 추구합니다. 형식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것에서 조성을 파괴한 무조음악으로 전향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합니다. 새로움과 혁신을 추구한 것이죠. 쇤베르크를 선두로 하는 제2의 비엔나 학파가 있었고, 스트라빈스키의 네오 클래시시즘, 리게티, 존 케이지등의 아방가르드도 생겨났습니다.

각각 다양한 길을 모색하던 당시, 윤이상은 동서양의 음악을 접목해 ‘중심음(Hauptton)’ , ‘중심음향(Hauptklang)’ 기법으로 새로운 길을 제시합니다. 용어가 좀 어렵게 느껴지지만 사실 한국인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세포안에 내재돼 있는 음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네요.

예를 들어 피리나 소금 대금이 산조를 연주할 때 하나의 긴 음을 가지고 시작해 꺾는음, 꾸밈음, 농현으로 변주하고, 클라이맥스를 향해 천천히 가는 것을 상상하면 됩니다. 윤이상은 그런 시김새의 언어를 한국 전통 악기가 아닌 서양 악기로 재현했습니다. 심지어 풀 오케스트라로도 말입니다. 작곡가 윤이상의 표현대로 그의 ‘피와 살’인 한국의 소리를 서양 작곡 기법에 접목시켜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해 낸 것이죠.

다시 윤이상의 3SAT와의 인터뷰로 돌아가볼까요. ‘더 강렬한 음악을 찾는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저는 루이제 린저와의 대화 ‘상처입은 용’의 한 소절이 떠올랐습니다.

“마지막 단락에서 첼로는 ‘라’(A) 음을 향한 고행을 시작한다. 길고 처절한 노력 끝에 ‘솔’에 이르고, 다시 힘을 내서 반음 더 높은 ‘솔#’에 이른다. 더 오르지 못하고 ‘솔#’ 음을 길게 내던 첼로는 마지막 힘을 모아 도움닫기를 한다. 솔#, 거기서 1/4음 더!

그리고 첼로는 생명을 다한다. 오보에가 첼로를 대신해 ‘솔#’에서 ‘라’로 상
승한다. 트럼펫이 ‘라’ 음을 이어받고, 음악이 끝난다.”

성시연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단장 겸 상임지휘자

묘한 감동이 입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을 공부한, 일제 치하에서 독립 운동을 하면서 어렵게 공부하고 일한, 그리고 두려움이 서서히 엄습해 올 나이인 마흔이 다 되서 유럽으로 건너갔던 윤이상. 결코 순탄치 않은 여정을 지나온 그가 힘들게 도움닫기하는 모습이 고행의 음악으로 절절히 표현된 것은 아닐까 싶어서요. 

윤이상의 또다른 그의 세계관을 볼 수 있는 작품은 ‘무악’입니다. 목관이 대표하는 동양, 그 외 오케스트라 악기가 대표하는 서양. 이 두 세계가 대립하고 갈등하고 화합하는 것을 ‘무악’이라는 춤의 형태을 빌려서 표현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연상됩니다. 다만 한 소녀가 제물로 바쳐지는 의식과는 달리, 화합과 인류애의 휴머니즘이 바탕을 이룬 의식이죠. 타악기들의 비팅을 듣고 있으면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집니다. 사람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원초적인 멜로디를 뿜어내는 목관 악기의 에너지…. 낮은 음역대에서 시작해 높은 음역대로 향하며 클라이맥스를 그리는 무악은 제사 의식을 대변하는 ‘동양판 봄의 제전’ 아닐까요.

윤이상의 방에는 평생을 아껴온 사진과 그림이 있었다고 합니다. 빛바랜 통영의 사진과 강서고분의 사신도 그림이죠. 이 사신도는 윤이상이 드로잉한 중심음의 형태와 흐름이 묘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사신도의 도교의 세계관이 작곡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는 음악은 저에겐 ‘세계관의 표출’로 읽힙니다. 그는 조용히 우주의 음을 듣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나 순간순간 흐르고 변화하며 순환하는 유연함, 처음도 끝도 없는 우주는 그의 음악과 닮아있습니다.

윤이상의 음악은 난해합니다. 우주의 음으로 시작해 흘러가는 음악이 어떻게 쉬울 수 있을까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내 작품이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한국으로 돌아가 더이상 오선지에 곡을 쓰지 않고 그냥 조용히 앉아 내 안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듣고 싶습니다. 그 때가 가까왔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귀가 들을 수 있는(혹은 듣지 못하는 음도 있겠지만) 복합적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영감과 삶의 중심인 그곳에 도달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시연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단장 겸 상임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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