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나은정 기자] 저작권 분쟁을 벌이다 최근 세상을 등진 고(故) 이우영 작가 15년간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으로 받은 돈이 1200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캐릭터 업체 측이 77개의 사업을 벌이면서 작가의 동의를 구하기는커녕 통지조차 제대로 하지도 않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성주 변호사는 "약 15년 동안 '검정고무신'으로 사업화를 한 개수가 77개를 넘어가는데 정작 고 이우영 작가님이 수령한 금액은 저희가 파악한 것으로는 총 1200만원에 불과하다"며 "심지어 어떤 명목으로 지급한 돈인지도 알 수가 없다"고 밝혔다.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은 이우영·이우진 형제 작가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이영일 작가가 글을 맡은 만화다. 이우영 작가는 캐릭터 업체 형설앤과 수년에 걸친 저작권 분쟁 끝에 최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작가는 형설앤과 체결한 '검정고무신' 사업권 설정 계약 때문에 생전에 심적 고통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2007년경 원작자들과 형설앤 간 사업권 설정 계약서와 양도 각서가 작성됐고, 형설앤 측은 '검정고무신' 저작물 관련 사업화를 포괄적·무제한·무기한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계약서에 담았다.
김 변호사는 "계약기간을 설정하지 않아 영구적인 사업권을 설정한 점, 사업 내용과 종류를 전혀 특정하지 않았고 원작자 동의 절차도 없다는 점, 사실상 포괄적 권리를 양도받으면서도 이에 따른 대가는 지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계약은 불공정하고 효력도 없다"고 했다.
계약서는 사업 수익에 대해 30%의 대행 수수료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지분율에 따라 나눈다고 명시했지만, 실제 정산은 불투명하고 불규칙하게 이뤄졌으며 금액도 약정한 것보다 터무니없이 적었다는 것이 대책위의 입장이다.
대책위는 또 형설앤 측이 15년간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을 비롯해 77개의 사업을 벌이면서 작가들의 동의를 구하기는커녕 통지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있다. 형설앤 대표 장모 씨가 '검정고무신' 공동저작자로 이름을 올린 것도 "저작인격권 침해이자 허위 등록"이라고 봤다.
무엇보다 이 작가를 가장 크게 괴롭힌 것은 자신이 만든 '검정고무신'을 마음대로 그릴 수 없었다는 점이다.
사업화 계약 당시에는 이우영·이우진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는 것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에 형설앤도 동의했다는 것이 대책위의 설명이다. 하지만 장씨와 이영일 작가는 자신들의 허가 없이 이 작가가 창작활동을 개별적으로 했다며 2019년 돌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김 변호사는 "민·형사 소송으로 작가들의 창작활동은 묶어놓고 애니메이션 극장판이나 롯데마트 협업 상품 등의 사업을 진행해왔다"며 "재판이 지연되면서 4년에 걸친 소송으로 작가가 고통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형설앤은 '검정고무신' 애니메이션 극장판 개봉을 앞둔 지난해 9월 저작권 논란과 관련해 "원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이우영 작가의 말은 허위 주장"이라며 "원작자와의 사업권 계약에 따라 파생 저작물 및 그에 따른 모든 이차적 사업권에 대한 권리를 위임받아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달 초 이 작가가 숨진 뒤 한국만화가협회 등 관련 단체들은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 17일 대책위를 결성했다. 대책위는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웹툰 표준계약서와 만화진흥법·예술인권리보장법·저작권법 개정 및 보완을 통한 창작자 권익 개선 방법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