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日역사교과서 공개 후폭풍
“역대 日역사교과서 중 가장 심각”
역사 관련 단체·교원 노조, 잇단 ‘비판 성명’
[헤럴드경제=김빛나·김희량 기자] 조선인의 ‘강제연행’·일본군 ‘종군위안부’ 표현이 삭제된 올해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 대한 논란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역사 관련 시민단체들은 “이번 역사 왜곡 교과서 사례는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한·일 국민 사이에 다시 균열이 생기지 않도록 한국 정부의 의사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역사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3월 31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일제히 이 같은 일본의 행보를 비판했다. 그동안 비판받았던 역사 교과서 중에서도 가장 정도가 심하다는 주장이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역사 왜곡 교과서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 여당 자민당이 아주 오랫동안 진행한 프로젝트”라며 “이전에도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제강점기를 부정하려는 노력을 해왔고, 이번에 논란된 역사 교과서는 그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역사 교과서 논란은 지난 29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내년 일본 고교 2학년 이상 학생들이 사용할 239종 교과서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공개된 교과서에는 독도에 대한 영토 주장뿐 아니라 조선인 강제노역과 일본군 ‘위안부’ 관련 강제성을 지우려는 정황이 드러났다. 해당 교과서가 역대 일본 역사 교과서 중에서 정부 견해를 가장 많이 반영해 논란이 커졌다.
독립운동가 후손 단체인 광복회도 일본 정부를 강력 규탄했다. 지난 30일 광복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명백한 식민지배의 역사를 수정, 불법강제 사실을 은폐하여 자라나는 세대에게 왜곡된 역사를 교육하려는 일본 정부의 전형적인 태도에 분노감을 감출 수 없다”고 비판했다. 광복회 관계자는 “일본의 역사 왜곡은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다”면서 “한일 관계의 걸림돌은 역사교과서 문제, 극우 정치인들의 망언 등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날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제1537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에서도 일본 교과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단상에 오른 시위 참석자는 해당 역사 교과서에 대해 “두손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 일본 정부도 ‘고노 담화’를 통해 인정했음에도 그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역사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 노조에서도 비판 성명을 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성명을 통해 “교육을 통해 역사를 왜곡하는 행태는 한일 관계는 물론 아시아 평화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지난해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종군위안부, 강제연행 등의 용어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면서 이들 교과서의 한국사 관련 내용은 상당 부분 왜곡됐다”며 “검정을 통과한 고등학교 사회과목 교과서 31종 중 20개 교과서에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있는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할 것을 권고했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비판할 것은 분명히 비판해야 한다”며 “새 정부가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의 이런 행위를 묵과하는 것은 오히려 역사 왜곡행위를 인정해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