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때로는 공급자가 아닌 미술을 향유하는 관람객의 시선으로 전시를 바라보기위해서다. 그래야만 관람객의 숨은 욕구를 파악해 향후 전시기획에 반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관람객이 어떤 작품 앞에서 발길을 멈추는지, 특정 작품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어느 날,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태도가 과거와는 다른 점을 발견했다. 특히 활자가 아닌 영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시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가 영상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에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영상 작품은 수 년 전부터 현대미술 전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적인 미술행사에서는 영상 작품이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익히 알고 있듯 영상 작품은 상영 시간이 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영상 작품을 위한 별도 공간을 마련하거나 TV 모니터, 대형 스크린 앞에 의자를 배치하는 것은 상영시간 동안 자리를 떠나지 말고 작품에 집중하라는 의도가 깔려있다. 그러나 젊은 관람객일수록 상당한 집중과 시간을 요구하는 영상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부분 1~2분 정도 보다가 이내 다른 작품으로 발길을 돌리곤 한다. 이는 작가 의도나 작품 메시지가 관람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상 작품이 관람객들을 오랫동안 붙잡지 못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영상작품뿐만이 아니라 회화, 조각, 사진을 감상할 때도 관람객들이 작품 앞에 머무는 시간은 놀랄 만큼 짧다.
독일의 미술평론가 크리스티안 제렌트와 아트디렉터 슈테엔 T. 키틀은 통계조사 결과를 근거로 한 작품을 감상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20초~60초라고 말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나온 관람객들에게 기억나는 작품이나 작가가 있는지 물었을 때 4분의 1이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절반 이상이 네 개 이하로 대답했다고 한다.
다음으로 스마트폰으로 전해지는 실시간 정보와 SNS 등으로 제공받는 콘텐츠는 많은데 시간이 부족한 타임푸어족(시간 빈곤층)이 문화소비의 핵심 세력으로 등장했다. 최근 도서, 드라마, 영화 등 문화콘텐츠를 요약해 제공하는 ‘서머리(summary) 서비스’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것도 시간이 부족한 젊은 세대의 욕구에 부응한 결과다.
미술계도 집중하기 어려운 복잡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20~30대 관람객들을 위한 새로운 전시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루브르미술관이 작품에 집중하지 못하는 관람객들을 위해 주요 작품들만 감상하는 단축 동선을 개발한 것이나, 최고 인기소장품인 〈모나리자〉로 직행할 수 있도록 바닥에 화살표를 표시해 놓은 배경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