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요즘처럼 한국미술계 분위기가 침체된 적이 없었다고’ 막연한 추측성 주장이 아니다. 몇 가지 객관적 자료는 미술인들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내년 가을 한국에서 열리는 대표적 국제미술행사인 광주비엔날레 (데프네 아야스-터키, 나타샤 진발-인도, 공동감독), 부산비엔날레(야콥 파브리시우스-덴마크),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융 마-홍콩) 예술 감독에 약속이라도 한 듯 외국인 기획자가 선정되었다. 국내 최대 국제미술행사로 꼽히는 광주, 부산, 서울비엔날레가 모두 외국인 예술 감독을 선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대규모 국제미술제에 한국인 기획자가 단 한 명도 뽑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 국제미술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를만한 역량을 갖춘 한국인 기획자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닐까?
또한 한국은 ‘미술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니스비엔날레에 매회 빠짐없이 참가했지만 2000년 이후 현재까지 임흥순 작가의 은사자상 수상(2015)에 그쳤을 뿐 상을 받는데 실패했다.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리는 기간 동안 기획여행상품이 등장할 정도로 국내 미술인과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에 비하면 한국전시관이 받은 성적표는 초라하다.
올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회고전은 미술계 최대의 화제를 낳았다. 국내 미술 전시 역사를 통틀어 최다 관람객(35만 명) 동원의 신기록을 달성하며 ‘호크니 신드롬’을 일으켰던 이 전시회는 한국인이 독자적으로 기획(영국 테이트미술관 · 서울시립미술관 공동 기획)한 것이 아닌데다 작가도 현존하는 영국인이다.
‘동시대 한국작가 중에서 35만 명에 달하는 관람객을 전시장으로 끌어드릴 만한 세계적 명성, 작품성, 상품성, 흥행성을 두루 갖춘 이가 있을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고개를 젓게 된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공 · 사립미술관, 대형갤러리 전시일정을 살펴보면 한국미술이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된다. 한국작가의 개인전 보다 외국작가의 개인전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화랑 관계자들은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은 외국작가를 초청해 침체된 한국 미술시장에 관심의 불씨를 살려내겠다고 언론을 통해 밝힌 바 있다. 한국미술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미술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올해 상반기 미술품 경매시장도 크게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미술시장 분석 사이트인 아트프라이스가 공개한 ‘2019년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결산’에 따르면, 총 거래액은 지난해 상반기(1030억 원)보다 19.8% 줄어든 약 826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한국미술계는 외형은 커졌으나 내실은 다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명확한 원인 분석과 근본적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