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칼럼-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공동장비센터 필요하다

‘정부가 고가의 영상장비(기자재)를 구입해 작가와 전시공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대여해주는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많은 미술인들이 입을 모아 얘기한다.

영상장비는 빛의 예술로 불리는 미디어아트에 사용되는 빔 프로젝터, 프로젝터 스크린, DVD플레이어, 모니터, 컴퓨터, 노트북, 음향기계 등 일체를 포함한다. 작가, 기획자, 미술관을 비롯한 전시공간에서 꼭 필요한 장비인데도 현재로는 꿈의 도구일 뿐이다.

가격대가 높아 사기도 어렵고 렌털(임차)비용도 부담스럽다. 빔 프로젝터 몇 개만 빌려도 전시기간에 따라 지불하는 비용이 작게는 수 백 만원, 많게는 일 천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대중이 환호하는 미디어파사드, 프로젝션 매핑에 필요한 고휘도, 고화질의 대형 빔프로젝터는 한 두 개만 빌려도 최소 일 억원 이상의 대여료가 발생한다. 미디어파사드는 건축물의 외관을 뜻하는 ‘파사드’와 ‘미디어‘의 합성어로, 건물 외벽을 스크린으로 사용해 영상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프로젝션 매핑은 프로젝터로 빛을 투사해 2D 가상영상을 3차원 실제공간이나 대상물과 일치시켜 공간감과 실제감을 극대화시키는 혁신 기법이다.

IT기술ㆍ여러 기능 등이 하나로 융합된 의미로 ‘컨버전스 아트(convergence art)’로도 불린다.

미디어아트는 IT 강국인 한국작가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인데도 고가 영상장비가 걸림돌이 되어 경쟁력을 잃고 있다. 품질과 성능이 우수한 고가영상장비가 예술적 표현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로 프랑스 컬처스페이스사가 개발한 아미엑스의 프로젝트 ‘빛의 벙커’를 꼽을 수 있다. ‘빛의 벙커’는 세계적 흥행 돌풍을 일으킨 몰입형 입체전시로 100여 개의 프로젝터와 수십 개의 스피커를 사용해 관객의 오감을 자극했다. 몰론 한국에서도 미디어파사드나 프로젝션 매핑이 구현되고 있다. 단, 엄청난 장비대여료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자가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 민간대기업이라는 게 문제다. 대체로 예술성보다 대중취향저격 흥행을 위한 이벤트성 행사로 국한되는데다 전시예산 대부분을 장비임차료가 차지해 참여 작가들이 불만을 토로한다. 대표적으로 2016년 평창문화올림픽 미디어파사드 사업에 참여했던 한 작가는 민간장비대여업체가 수억원의 임차료를 가져가는 바람에 작가지원금이 줄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행사가 많아질수록 작가가 아닌 장비대여업체가 돈을 가져가는 구조라는 것이다.

공공미술관은 예산부족, 사립미술관과 대안공간. 갤러리는 재정상태가 열악해 다양한 영상장비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테크놀로지와 관련된 새로운 매체를 실험하는 작가들이 빚을 지면서까지 고가장비를 구입해 전시에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또는 지자체 문화재단에 공동장비활용센터를 만들어 작가와 전시기관에 최저 비용으로 빌려주는 제도를 진지하게 고려해 볼 시점이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