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칼럼-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전시비용 감당하기 어렵다

큐레이터들이 작성한 2019년 전시예산서를 살펴본 필자의 가슴이 철렁해졌다.

전시예산 확보는 어려워진 반면 지출 비용은 예년에 비해 큰 폭으로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입법 예정인 ‘미술분야 표준계약서’에 ‘미술창작 대가 지급’에 따른 작가비, 사례비, 제작비, 산업재해보상보험료 등 지출 용도를 구분해 명시했다.

작가비는 전시 참여작가에게 지급하는 보수, 사례비는 작품을 창작하는 데 소요되는 보수, 제작비는 작품제작에 필요한 인건비, 재료비, 현장설치, 기초구조물 부대공사비, 철거비, 산업재해보상보험료란 작가를 피보험자로 하는 보험료를 말한다.

통상적으로 미술관, 비영리전시공간에서의 전시비용은 작가비, 사례비, 제작비, 산업재해보상보험료를 구분하지 않고 예산규모에 따라 작가와 협의 하에 지급해왔다. 그러나 올해 ‘표준계약서’가 도입되면 계약서에 명시된 비용을 규정에 따라 별도 지급해야한다. 정부는 표준계약서가 의무 준수 사항이 아니며 1차적으로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미술관에만 적용된다고 밝혔지만 작가가 사립미술관, 비영리 전시공간에도 표준계약서 체결을 요청할 경우 거부할 명분이 없다.

전시기획자가 아니라면 한 전시회를 개최, 종료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작가에게 지급되는 비용이외도 화집이나 도록 제작비, 작품운송비와 보관비, 작품보험료, 전시홍보물, 기자간담회비, 큐레이터 인건비, 전시장 관리 인력비, 사무실 운영비 등 지출항목을 나열하기에도 숨이 찰 정도다. 반면 수입은 입장료와 국가나 지자체의 공모사업인 전시지원금에 불과하다. 이중 전시지원금은 수입예산으로 편성할 수도 없다. 대다수의 사립미술관, 비영리전시공간이 크고 작은 전시공모사업에 응모하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해 선정되기가 어렵고 다행히 뽑히더라도 예산을 배정받고 집행하기까지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그런데도 ‘표준계약서-작가와 미술관 간의 전시계약서’ 제13조(제작비 등)에 전시기관은 계약 체결과 동시에 제작비 등 합계 금 70%를 작가에게 지급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있다.

제작비 70% 선지급 조항은 미술현장과 동떨어진 규정이다. 미술 특성상 작품제작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관계로 대체로 전시계약서는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 년 전에 체결한다.

과연 선지급을 감당할만한 재정을 확보한 사립미술관, 비영리전시공간이 몇 관이나 될까?

표준계약서를 도입해 작가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정부방침에 반대하는 미술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시비용이 늘어나면 전시공간들이 전시 횟수를 줄이거나 기획을 아예 포기하는 쪽으로 방법을 찾게 될 거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필자는 미술현장에서 이런 사례들을 이미 접하고 있다. 지금도 작가들은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전시공간이 부족하다고 어려움을 호소한다. 정부는 전시비용에 대한 추가예산이 마련되지 않는 ‘표준계약서’도입이 전시환경을 악화시킨다는 현장의견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