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빛의 현장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한…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 과정

문재인 대통령은 말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취임 당시 밝힌 국정 기조다. 그러나 최근 선임절차가 마무리된 국립현대미술관장 임명의 과정을 보면 과연 이같은 국정기조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미술계도 덩달아 시끄럽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ㆍ이하 문체부)는 지난달 31일 미술평론가 윤범모씨를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에 임명했다. 바르토메우 마리 전 관장이 퇴임한지 한 달 여만의 일이다.

그러나 공모로 진행된 선발과정에서 윤 관장을 앉히기 위해 ‘꼼수’를 썼다는 것이 밝혀지자 공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문체부는 지난해 12월 26일 최종후보자 3인에 대해 역량평가를 실시했다. 2006년 생긴 고위공무원단 규정에 따른 것으로,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고위공무원 자격이 없다. 당시 시험에서 1명의 후보자만이 통과했고 윤 관장을 비롯한 다른 후보자는 5점 만점에 기준점인 2.5점을 넘기지 못해 낙제했다.

원래대로라면 통과자에 대해 인선절차가 진행해야 하건만, 무슨 이유에선지 문체부는 다른 후보자 2인에 대해 재평가를 실시했다. 이때는 두 후보 모두 기준점을 넘겼다. 문체부는 이후 윤범모씨를 관장에 낙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뽑을때 역량평가를 두 번 치른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체부는 애초 후보자들에 대한 역량평가도 면제하려 했다. 그러나 “특정 후보자가 탈락 할까봐 그러는 것 아니냐”, “이전 관장 선임때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여론에 밀려 방향을 선회했다.

이미 통과한 사람이 있는데도 굳이 재평가를 치르는 사상 초유의 선택에 대해 문체부는 “후보들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준다는 차원에서 결정한 것일 뿐, 정치적 결정은 아니다”이라는 옹색한 해명만 했다. 그마저도 제대로 된 답이 아니다. 원하는 사람이 떨어졌으니, 알량한 규칙조항을 이용해 패자부활전을 한 것이다.

“문화예술기관장에게 일반 공무원용 역량평가는 중요치 않다”는 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문화예술기관도 기관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 예산은 632억이다. 서울관, 과천관, 덕수궁관, 미술품수장보존센터 등 4개관을 거느린 아시아 최대규모 미술관이다. 기관장으로 앉은 인사에게 기대하는 건 행정과 정책실행이지 예술성을 녹여낸 ‘작품’이 아니다.

코드인사를 비난하고 싶진 않다. 권력자가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쓰고자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능력이다. 공직자의 최소한의 기준인 역량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인사를 무리하게 앉혀야 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이같은 ‘답정너 인사’가 장관의 재량이라면, 그 재량을 발동한 원인이 무엇인지 장관이 밝힐 차례다.

들려오는 정보가 모두 사실인지 알 길은 없지만, 재평가 당시 또 낙제할까 걱정돼 문체부 관료가 직접 과외를 해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진보진영에 그렇게 인사가 없는지 안타깝기까지 하다.

결국, 블랙리스트 이전의 문체부와 지금의 문체부는 똑같다. 늘 고까운 소리 하는 예술인이 싫어 이들을 배제한 블랙리스트나, 자기 입맛에 맞는 소리하는 이들을 챙기는 화이트리스트나 그 방향만 다를 뿐, 작동 방식은 똑같다. 블랙리스트는 그르고 화이트리스트는 옳다고 과연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문화에서 진보는 좌도 우도 아니다. 리버럴리즘을 기본으로 개인의 창의성을 얼마나 담보해 줄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또한, 한 때 ‘현실과 발언’에 참여한, 부조리에 항거했던 미술인들의 종착점이 바로 이런 사태라면, 처참하기 그지없다. 그들이 핏대높여 비판했던 부도덕, 부조리, 불의의 총합을 바로 자신들이 하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