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죠? 거론되는 세 분 중 누가 되더라도 ‘그들만의 리그’ 일 텐데요”
우연히 젊은 작가들과 함께 한 자리가 있었다. 화제는 자연스레 미술계 현안인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흘렀다. 인선을 놓고 관련 칼럼과 기사가 쏟아지지만 정작 문제의 당사자로 보이는 미술인들의, 특히 젊은 미술인들의 무반응에 대해 ‘악성 무플’ 수준 아니냐고 물었던 참이었다. 돌아온 대답에선 계속된 좌절로 인한 짙은 ‘회의’와 안타까움마저 사라져버린 ‘냉소’가 읽혔다.
지난 26일엔 최종 후보자 3인에 대한 역량평가가 진행됐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역량평가를 면제하고 임명을 강행하려다 ‘낙점한 인사가 역량평가를 통과하지 못할 것으로 보여 건너뛰려는 것 아니냐’, ‘앞서 역량평가를 받은 인사들과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여론에 방향을 선회했다. 역량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1명을 선임하면 인선절차가 모두 마무리된다. 문체부 관계자는 “최종 임명은 내년 1월 중하순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오늘,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고가 청주에 오픈한다. 사업비 577억원을 들여 옛 청주연초제조창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보이는 수장고’를 컨셉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체 소장품 중 절반인 4000여점이 보관ㆍ전시된다. 김환기의 ‘초가집’(1950년대)과 이중섭의 ‘호박’(1954년), 박래현의 ‘영광’(1967년)을 비롯 백남준, 권진규, 서세옥, 서도호, 이수경, 전준호의 작품 등 근ㆍ현대미술품이 그 대상이다. 우리 근현대미술의 보석들이 모인 곳, 이곳의 탄생 자체가 이 시대의 작가들에게 또다른 예술적 영감을 줄 것이다.
청주관 오픈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은 아시아 최대규모 미술관으로 발돋움했다. 전세계에서도 영국 테이트미술관을 제외하고 그 규모면에선 국립현대미술관을 능가하는 미술관을 찾기 어렵다.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날에 관장이 공석인 건 아쉬운 일이지만, 관장 부재를 이유로 개관일을 늦추지 않은 건 다행한 일이기도 하다. 미술관이 그만큼 시스템으로 움직인다는 증거일테니.
신임 관장에게 떨어질 숙제는 그래서 고난도다. 미술관 내부의 뿌리깊은 관료주의는 분명 타파 해야할 대상이지만, 그라운드 제로에서 다 바꿀 순 없다. 바르토메우 마리 전 관장이 ‘원 뮤지엄’을 천명한 덴 미술관 내부 파벌 싸움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고작 2년의 시간만이 흘렀을 뿐이다. 그 사이 과연 파벌이 다 없어졌을까. 한국미술의 세계화 초석이 될 전시 영문 도록 발간은 이제 시작이다.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하면 그 장벽안에 갇히는 건 바로 우리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과연 무엇을 얻었는지는 역사가 말해준다. 뿐만이랴, 미술관을 ‘그들만의 리그’로 정의하는 젊은 작가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 그런 감동의 영역까지 신임 관장의 영역이다. 캠코더(캠프ㆍ코드ㆍ더불어 민주당)와 논공행상을 따질 것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