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작품을 하나로 볼 것인가 별개로 볼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예전 같으면 별 다른 고민 없이 후자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서양미술사에는 도덕적 결함이나 여성편력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예술적 업적을 남겼다는 이유로 불멸의 명성을 얻은 예술가들이 있다.
예를 들면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는 폭행을 일삼았고 심지어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로마에서 추방당했지만 혁신적 명암법(키아로스쿠로)을 개발한 업적을 인정받아 회화의 혁명가, 명암법의 시조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또 피카소는 46세에 17세 소녀 마리 테레즈를 유혹해 정부로 삼은 것을 비롯해 숱한 여성편력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입체주의 양식을 창안한 업적으로 현대미술의 황제, 성적에너지를 예술로 승화시킨 천재로 숭배 받고 있다.
그러나 ‘미투’’운동이 문화예술계를 뒤흔들고 있는 요즘 예술가와 작품이 별개라고 선뜻 말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며칠 전 만났던 k와의 대화를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진다.
k는 평소 존경하던 예술가가 미투 가해자 의혹을 받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배신감이, 다음은 하마터면 경제적 손실을 입을 뻔했다는 안도의 감정이 밀려왔다. k는 몇 달 전, 미술애호가인 지인의 집을 방문하고 거실에 걸려있던 한 작품에 마음을 빼앗겼다. 내면 깊숙이 침잠하는 명상적 분위기의 작품은 빠른 속도의 삶에 지친 k의 영혼을 위로해주었다. 그 순간 이 작가의 작품을 사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작품가격이 비싸 구매를 포기했는데 놀라운 뉴스를 접하게 된 것이다.
k는 ‘미투 가해자와 사색적인 작품을 창작한 예술가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한편으로 소장하고 싶은 욕심에 덜컥 작품을 샀더라면? 부도덕한 예술가를 비난하는 사회분위기는 미술시장에 영향을 미쳐 가격이 폭락하고, 거래도 잠정적으로 중단될 것인데 천만다행이라며 뒤늦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필자는 k와의 대화를 통해 보통사람들이 예술성보다 예술가의 인성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미투는 미술인들의 인식을 바꾸는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워싱턴국립미술관이 5월로 예정된 극사실주의 거장 척 클로스의 전시를 전격 취소했다.
하지만 도덕적 결함과 예술적 성과 중 어느 한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지는 않았다.
워싱턴 국립미술관은 격자를 이용한 독창적인 극사실주의 초상화기법을 개발한 척 클로스의 예술적 성과는 인정했다. 미술관에 소장된 척 클로스의 작품은 계속 공개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니 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필자는 요즘 들어 평소 소신이 자주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오직 작품 그 자체만으로 평가받아야 된다는 생각이 옳은가?
스스로 되묻는 시간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