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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인’이 보여주려는 것은 어디까지인가?[서병기 연예톡톡]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MBC 금토드라마 ‘연인’의 시대적 배경은 1636년 12월 발발한 조선 병자호란기다.

병자호란에 대한 역사 콘텐츠는 김훈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 등 적지않은 작품들이 있지만 학창시절 배운 짧은 역사적 사실과 영화 ‘남한산성’ 정도로 당시 스토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영화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나온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 중 한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둘 다 나라를 위하는 전혀 다른 방식이자 전략이다. 굳이 이 영화의 ‘빌런’을 꼽는다면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보인 영의정 김류(송영창)다.

드라마 ‘연인’은 병자호란을 겪으며 엇갈리는 남궁민(이장현), 안은진(유길채), 이학주(남연준), 이다인(경은애) 등 남녀들의 사랑과 백성들의 생명력을 다룬 휴먼역사멜로 드라마다.

얼핏 미국 남북전쟁기 사랑과 강인한 남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설정이 유사하다. ‘연인’의 황진영 작가는 이미 “비극적 상황에 내동댕이쳐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병자호란 같은 경우 독한 패배의 역사이기에 쉽게 손대지 못했는데 고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영감을 받아 고난의 역사를 조금은 경쾌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조금 있으면 전쟁이 휘몰아친다는 걸 다 알고 TV를 보고 있는데, 당시 조선은 너무 평화롭다. 한 노인 부부의 회혼례를 치러주며 춤추고 노래하고 흥청망청이다. 그래서 특히 철없는 양반가 처녀로 등장한 ‘온실 안 공주’ 유길채가 본의 아니게 대표선수로 욕을 먹은 감이 있다.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도 결국 강인한 여성으로 그려지지만 초반에는 ‘밉상’ 캐릭터다. 작가는 정묘호란이 발생한 지 9년이 지난 상태에서, 전쟁은 그런 상태에서 온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 같았다. 길채역을 맡은 안은진은 전쟁이 휘몰아치면서 강인한 면과 도도함, 귀여움을 적재적소에 발휘하며 성장하는 캐릭터를 잘 그려내고 있다.

사극 ‘연인’이 보여주려는 것은 어디까지일가? 실제 역사에서 조정의 대세가 척화파의 대의명분주의가 향하는 주전론으로 기울자, 인조 왕은 아무런 준비 없이 선전 교서를 내려, 병자호란을 유발한 당시 분위기를 이어가려는 듯하다. 드라마는 당시 사회와 전쟁을 슬쩍슬쩍 건드리면서 핵심을 찌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멜로를 진행시키면서도 국가와 백성과의 관계, 리더십 등 역사의 묵직한 부분을 다룬다.

1회에서 신하들이 명(明)이 청(淸)을 이길 것이라며 빨리 명으로 사신을 보내라고 하자, 이장현(남궁민)이 “오랑캐가 명을 이긴다는 생각은 안해봤나”라고 말한 게, ‘연인’이 이 시기를 보는 중요한 시선이자 관점이다. 그러면서 명 말기의 명장 원숭환을 거론한다.

건주여진을 통합한 청태조 누르아치가 명을 치기 위해 만리장성을 넘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원숭환 장군의 철통 같은 수비병력에 막혀 영원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명나라 장수 원숭환은 누르하치뿐 아니라 그의 아들 홍타이지의 공격마저 막아내며 나라를 망하지 않게 한 인물이다.

하지만 원숭환은 권력을 탐한다는 모반의 누명을 쓰고 자신의 황제인 숭정제에 의해 무시무시한 책형을 당했다. 숭정제는 구국의 영웅을 알아보지 못하는 바람에 명의 마지막 왕이 되는 불명예를 자초했다. 동시에 후금(청) 입장에서는 손쉽게 장애물을 제거한 셈이다.

누르아치의 아들 홍타이지(칸)는 ‘대청’ 황제를 칭하고 조선에 간자(간첩)를 심어 상황을 파악한 후 장수 용골대에게 기습 공격을 감행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연인’ 2회에 이 상황이 나온다.

“너는 상인으로 위장하고 아침과 밤을 가리지 않고 달려 먼저 조선 왕이 있는 궁을 포위하라. 조선의 각 성과 다투며 시간을 지체하지 말라. 너는 반드시 조선 왕이 강화로 도망가기 전에 한양에 입성하여 짐이 오기를 기다려라”

이런 상황에서 3회부터는 백성으로서 국가를 바라보는 시선과 전쟁에 임하는 자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장현은 상황 관찰을 하기에 아주 좋은 캐릭터다. 그는 처음부터 “난 의병에 나설 생각이 없소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나. 장현이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는데, 왜 백성이 임금을 구해야 하나”라고 하자, 의병 활동에 나선 연준은 “나라의 근본을 구하는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장현은 “위험할때 가장 먼저 몸을 피하는 게 나라의 근본이 하는 일이죠”라고 맞받아친다.

장현은 스스로가 이재에 밝은 현실주의자로 포장돼 있는데, 정작 전쟁이 일어나자 말과 무기를 공급하는 일을 가장 먼저 한다. 이장현은 ‘전쟁 츤데레’다.

장현은 평소 비혼이니 “썸”이니 하며 전국 각지에 여자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청 군대가 노리는 것이 재물과 여자임을 먼저 간파하고 이에 대해 가장 먼저 대책을 수립한다.

여성이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하여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면 관직 길이 막혀 혼인을 뒤로 미뤄달라고 하는 선견지명도 장현 머리에서 나왔다.

연준은 평소 학문을 갈고닦지만 전쟁이 나면 전장에 싸우러 나가는, 배움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는 위로는 남명 조식의 제자인 북인 정인홍과 북인이면서 남인들과 가까운 곽재우의 임진왜란기 의병 활동의 맥을 잇고 있다. 연준은 “조선 백성이 할 일은 비굴하게 살거나 떳떳하게 죽는 일뿐이다”고 했다.

하지만 연준은 장현에 비해 큰 그림을 그리는 것과 유연성에서는 다소 약할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장현과 연준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많은 걸 생각하게 된다.

인조는 반정에 의해 비주체적으로 왕이 되다보니 반정공신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무려 세 차례나 왕궁을 비우고 몽진(도망)한 무능한 왕과,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백성. 이 두 남자의 대비를 통해 당시 백성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전략은 제대로 통했다.

5회에서는 병자호란때 조선이 무능하게 패배만 하지 않았음도 보여준다. 누르하치의 사위이자 홍타이지의 매부인 ‘양고리’가 조총에 맞아 전사하자 조선의 병사들은 “우리가 오랑캐를 이겼다”고 환호하는 장면이다. 청군이 죽은 동료 오랑캐들의 시신을 불태우는 장례식중 치러진 기습 작전은 영상으로도 멋있게 구현됐다.

실제 광교산에 진을 친 전라병사 김준룡 부대 이야기다. 극중 이 전투도 이장현의 도움을 받아 승리한다. 하지만 엄청난 전공을 세운 김준룡 부대는 보급(원병) 길이 끊기면서 결국 해산한다.(병자년 이듬해인 정축년 1월 6일)

장현이 소현세자(김무준)에게 한 말, “나라에서는 이토록 중들을 무시하는데, 중들은 나라에서 난리만 나면, 그 민머리가 번쩍거리도록 목숨 걸고 나서는지...”라고 말하는 의미도 새겨볼만하다.

중종의 제2 계비이자 명종의 엄마인 문정왕후는 숭유억불사회에서 대놓고 불교를 중흥시켰다. 세종과 세조도 쉬쉬 하며 불교를 숭상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감안하면 엄청난 걸크러시다.

문정왕후는 승과와 도첩제를 부활시켰다. 보우를 봉은사 주지로 힘을 실어줘, 일종의 승려사관학교 같은 게 만들어졌다. 이때 발탁된 대표적인 승려가 임진왜란때 의병으로 활약한 휴정(서산대사)과 유정(사명대사)이다. 유정은 임란후 일본 교토에 가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500명을 데리고 귀국한, 한일외교의 선지자 같은 분이시다.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산사에 있던 승려들이 순식간에 의병을 조직하여 외적과 맞서 싸워 호국불교의 역량을 발휘한 것도 임란때 선배들을 이어받은 자연스런 행위였다.

문정왕후는 남편인 중중 무덤이 제1 계비인 장경왕후가 잠든 서삼릉중 하나인 희능 옆에 있었는데, 자신과 함께 묻히게 위해 남편 무덤을 지금의 선능 옆 정릉(선정릉, 선릉은 중종의 아버지인 성종의 능)이 있는 것으로 옮겼다. 이것이 중종의 정릉(靖陵)과 봉은사가 가까워진 이유다. 하지만 문정왕후는 정작 자신이 죽자 봉은사 부근의 정릉에 남편과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형태로 묻히지 못하고 태릉에 홀로 있다.

극중 이장현이 장수가 “마지막 살아있는 목숨과 마지막 화살까지 쓰고 갈 것이다”고 하자 “왜 거룩하게 죽기를 다짐하시오. 이왕 거는 목숨, 이기는 싸움에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인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생긴다. 병에 물이 반이 차 있을때 “반밖에 안남았다”와 “반이나 남았다”는 차이를 불러온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한 말인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나이다”가 그냥 나올 리 없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기(士氣)라는 말도 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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