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2500원이 순식간에 800원으로.”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주가는 급락했는데, 거래마저 정지됐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육사 출신의 오너 2세는 그 사이 지분을 정리, 약 260억원을 챙겼다.
심지어 이 사태는 이 오너 2세가 회사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썼다가 이를 갚지 못해 벌어졌다. 사태를 만들고, 책임은 피하고, 돈은 챙긴 오너 2세. 바로 40년 넘는 역사 국일제지의 최우식 대표다.
국일제지는 현재 홈페이지에 회생절차를 신청했다는 공지를 올려놓은 상태다. 대표이사 명의로 올린 안내문에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자 최선을 다했으나 부득이 회생절차를 신청하게 됐다”며 “주주 및 거래처에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사죄하고 채권상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지했다. 이어 “최선을 다해 믿음으로 보답하겠다”고 덧붙였다.
공지와 달리 전후 과정을 살펴보면 믿기 힘든 정황이 곳곳에 드러난다. 국일제지는 담배 등의 산업용 기능지 등을 주로 다루는 기업이다. 무려 1978년에 법인이 설립됐을 만큼 40년 넘는 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대통령상으로 산업포장, 100만불 수출탑 등을 수상하는 등 부친인 최영철 회장이 주요 제지기업으로 일군 회사다.
최우식 대표는 2002년 말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회사를 물려받았다. 최 대표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육사 졸업 후 맹호부대, 수도방위사령부 등에서 근무했다. 그러다가 가업을 물려받으라는 부친의 요청에 경영인으로 선회한다.
회사를 물려받은 그는 육사 출신답게 공격적으로 경영에 임했다. 2005년엔 업계 2위 규모의 신호제지를 인수한 후 직접 대표이사에 올랐다. 신호제지는 이후 일부 사업이 매각되고 나머지는 국일제지 자회사로 남게 된다. 이 사업 부문도 자본잠식을 거쳐 결국 매각됐다.
다시 국일제지로 복귀한 최 대표는 이번엔 그래핀 사업을 추진한다. 2018년 때 일이다. 사업 다각화 차원이라며 야심차게 추진했고, 구글과의 협업을 비롯, 청사진을 내놨다.
매출은 없고 실적은 참담했다. 다음은 최근 사업보고서에 국일제지가 직접 명시한 그래핀 사업 관련 내용이다.
“당사에선 사업보고서 기준일까지 매출 실적 및 판매경로·방법은 없습니다. 최첨단 선도 제품이기 때문에 시제품이 만들어지는 개발 동안엔 보안을 유지하되 시제품 출시에 맞춰 적극적으로 홍보할 예정입니다.”
국일제지는 영업이익이 10억원 미만으로 계속 떨어지다가 심지어 2021년엔 적자전환했다. 63억원 적자였다. 작년엔 110억원까지 적자가 늘었다. 국일제지는 “원재료 상승에 따른 매출원가 증가와 외환차손이 반영됐다”고 밝혔다.
먼 미래를 보고 과감한 신사업을 추진할 수도 있다. 그러다 최악의 경우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책임도 분명하다.
국일제지는 최 대표가 보유 회사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가 상환이 어려워지자 지난 13일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감사인의 감사의견 거절 등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 14일부터 주식거래도 정지됐다. 투자자들은 나락에 떨어졌다. 불과 한 달 전 2500원대였던 주가는 800원대로 떨어진 채 이젠 거래마저 불가능한 상태다.
최 대표는 그 사이 보유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거래 정지 전까지 장내 매도가 이어졌고, 대규모 매도 물량이 나오면서 주식은 크게 곤두박질 쳤다. 13일까지 2400만여주를 팔아 260억원을 현금화했다.
이 과정에서 디케이원이란 스포츠용품 거래업체에 주식을 넘기고 디케이원은 이 지분을 시장에 파는 일도 벌어졌다. 경영권 매매의 주식양수도계약 형태를 띄고 있지만, 업계에선 이 계약 자체의 진위를 의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