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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랑 4개 사니 끝”…1년만에 달라진 ‘1만원 장바구니’ [만원의 행복]
단돈 1만원으로 살 수 있는 바지락 수제비 재료들. 구성이 단출하다. 이정아 기자
1만원으로 구입한 바지락 수제비 재료들. 감자, 당근, 대파는 구입조차 할 수 없었다. 이정아 기자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가격 심리적 저항선인 ‘1만원대 법칙’이 깨지고 있다. 거세게 몰아친 물가 인상 파도가 새해 벽두부터 장바구니를 또다시 덮치면서다. 500g 고추장이 1만원을 넘어섰고, 200g 기준 삼겹살 1인분은 2만원에 달한다. 프랜차이즈 치킨 한 마리는 3만원에 육박했다. 그러다 의문이 들었다. 20년 전 한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 이름처럼, 과연 단돈 1만원으로 2023년의 소비자는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단돈 1만원으로 ‘2인 한끼’ 바지락수제비 만들기

이를 알아보기 위해 마트에서 장을 보되, 2인 가구 기준 한끼 식사 지출로 최대 1만원을 넘기지 않겠다는 기준을 세웠다. 단 최대한 영양이 고루 잡힌 집밥 한끼로 준비하고, 간단한 후식도 챙기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물가 상승을 제대로 체감하기 위해 가격 인상률이 최고점을 찍은 식자재 위주로 구성된 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그 결과 1만원으로 두 명이 먹을 수 있는 ‘바지락 수제비’ 한 끼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최대 지출 금액을 1만원으로 산정한 데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1인 가구 기준 일평균 식비가 1만6000원이라는 점이 크게 고려됐다. 단순 계산하면 1인 가구 한 끼는 5333원이다. 전년 대비 올해 품목별 가격 인상률은 관세청이 11일 공개한 농축수산물 수입가격에 근거해 산출했다.

바지락 수제비를 만들기 위해 바지락을 냄비에 넣었다. 냄비 크기에 비해 소박해 보이는 바지락 양. 이정아 기자

장보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1만원으로는 당근, 감자, 대파가 쏙 빠진 반쪽짜리 바지락 수제비가 가능했다. 밀가루와 바지락 가격이 1년 만에 각각 23.2%, 39.4% 오르면서 채소를 살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수제비 양에 비해 바지락 양이 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소 모양은 빠져도 지금껏 재료를 사서 만들어 먹은 바지락 수제비 중에서 가장 비싼 음식이었다.

1만원으로 2인 가구 장을 보기 위해 10일 오후 9시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방문했다. 20~30% 할인된 신선상품이 진열되는 저녁 시간이라는 점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바지락을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가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000원대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국민조개’ 바지락(200g) 상품의 가격이 2000원을 훌쩍 넘어섰기 때문이다.

1년 전에 비해 23.2% 가격이 인상된 바지락. 이정아 기자
1년 전에 비해 39.4% 가격이 인상된 밀가루. 이정아 기자

밀가루 판매 코너에서는 한참을 망설였다. 수제비를 만들 때 사용하는 중력분 밀가루(1㎏)가 무려 3000원을 넘어서면서다. 빵을 만들 때 사용하는 강력분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어도 문제가 없다는, 인터넷 검색 결과를 믿어 보기로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같은 용량이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강력분 밀가루(1㎏)를 담아야만, 다른 식자재를 더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밀가루 반죽을 할 때 식용유 한 큰술을 넣으면 손에 반죽이 잘 묻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식용유가 가득한 매대는 그대로 지나쳤다. 1년 만에 식용유 가격이 25.6%나 올랐기 때문이다. 식용유를 카트에 담으면 장바구니 예산을 초월할 것이 분명했다.

1년 전에 비해 6% 가격이 인상된 우유. 이정아 기자
장바구니 결제 목록. 이정아 기자
밀가루·바지락·우유 가격 ‘껑충’…당근·감자·대파 포기

바지락 수제비에 넣을 채소로는 애호박, 당근, 감자, 대파를 고려했는데 모두 살 수가 없었다. 1만원 예산이 초과돼 버리기 때문이다. 바지락 칼국수에 절대 빠져선 안될 채소만 최소한으로 사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렇게 고민 끝에 구매한 식재료가 애호박과 양파였다.

3개월 전부터 더 이상 커피를 사 먹지 않는 기자는 대신 따뜻한 우유 한 컵을 마신다. 바지락 수제비 재료를 사면서 후식으로 먹을 우유 한 팩 예산을 꼭 남겨둔 이유다. 하지만 남은 돈은 2000원 수준에 불과했다. 항상 사 먹는 우유가공 업체 상품이 아닌, 대형마트 자체브랜드(PB) 제품을 구입해야만 했다. 1년 사이에 우유 평균 가격이 6%나 오르면서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기호식품인 과자, 아이스크림, 음료는 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바지락 수제비를 만들기 위해 서울 시내 한 이마트에서 구입한 상품들(최대 예산 1만원·2인 가구 기준).

“미안해요. 1000원 올렸어요. 밀가루 가격이 워낙 올라서 버틸 수가 있어야지. 요새는 바지락까지 엄청 올라 버렸다니까…. 정말이야, 남는 게 거의 없어.”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뜨끈한 국물 두세 숟가락을 얹고 싶어 지난주 찾았던 서울 용산구의 바지락 수제비 식당, 그곳 주인 아주머니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곳은 그전까지 8000원이었던 바지락 수제비 가격을 올해 초 9000원으로 인상했다.

1만원어치로 만든 바지락 수제비는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으로 만들어졌지만, 바지락 양이 부족해 개운한 국물 맛이 아쉬웠다. 씹는 맛을 더해주는 감자, 당근 등 아삭한 채소의 풍미도 느끼기 어려웠다.

1만원으로 만든 바지락 수제비 결과물. 이정아 기자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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