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집값 하락해야” 목소리 높여
금융과 연결된 집값...부동산금융 2200조원
한은, “집값 하락 소비, 실물경제 직격탄”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 2일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집값을 하향 안정화시키고, 누구도 주택 때문에 고통받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그는 “부동산투기를 막지 못해 죄송하다”며 “개발이익환수제 강화, 분양가상한제 등 ‘강력하고 대대적인 부동산대개혁’에 나서겠다”고 했다.
앞선 지난 10월 29일 오후 서울 종각역 보신각 앞에서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 실패를 규탄하는 시민단체 모임인 ‘무주택자 공동행동’은 “집값을 문 정부 이전으로 원상회복시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값 원상회복’을 언급한 건 사실 문재인 대통령이 먼저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초 “(집값이) 위화감을 느낄 만큼 급격히 상승한 곳이 있는데 이런 지역들은 가격이 원상회복돼야 한다”고 했다.
내년에 있을 대통령선거 유력 주자부터 무주택자 시민단체, 현직 대통령까지 너도나도 ‘집값 하향 안정화’ 혹은 ‘집값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시대다. 모두 현재 집값은 정상이 아니라고 보고 떨어뜨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누구나 집값 하락을 원하는 분위기지만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자가보유율은 60.6%다. 60% 이상이 내심 집값 상승을 즐거워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이들에게 집값 하락은 더 큰 위기로 느껴질 것이다.
만약 정말로 집값이 하락한다면 어떻게 될까. ‘집값 원상회복론’까지 나오는 마당에 실제 집값이 절반 수준으로 폭락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먼저 부동산과 경제가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 한 번 따져보자. 우리나라 가계대출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게 주택담보대출이다. 2021년 2분기 기준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948조원 수준이다. 시중은행은 주택담보대출(LTV) 기준을 집값의 50~60% 정도 적용하지만 보험회사 등 금융권은 추가 대출을 통해 최대 95%까지도 허용한다. 집값이 5%만 하락해도 대출 원금 회수가 불가능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부동산담보대출을 포함한 부동산금융은 지난해 말 기준 2200조원을 넘은 상태다. 우리나라 연간 GDP(국내총생산) 규모(1900조원)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여기엔 금융회사의 부동산 관련 대출과 보증, 기업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차입금, 부동산펀드·자산유동화증권(ABS), 주택저당증권(MBS), 리츠(부동산투자회사) 등이 포함된다. 만약 부동산시장이 하락한다거나 금리가 오르면 이런 부동산금융에 부실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집값 하락은 금융시장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발표한 ‘주택 가격 변동이 실물·물가에 미치는 영향의 비대칭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집값 하락은 민간소비, 기업 고용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은은 실제 집값이 역대 가장 많이 떨어졌던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분기와 3분기 상황을 소개했다. 당시 집값은 17.7% 떨어졌는데 당시 평균 주택담보대출 비율이 75% 정도였다. 당시 집값이 하락하자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기 시작했다. 차입금이 많을수록 소비는 더 많이 줄였다. 당시 민간 평균 소비가 4%가량 줄었다. 집값 하락에 따른 고용자 수 감소 영향도 ‘-4%’ 수준이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정부에서처럼 ‘빚투’ ‘영끌’로 가계부채가 급증한 상황에서 집값 하락은 한국 경제에 더 큰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 전직 정부 고위 관료는 “어떤 정부도 집권기에 집값이 떨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서 “문 정부가 현재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건 ‘집값 하락’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것과 상관없이 실제로는 집값이 계속 올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정부는 2022년 수도권 집값은 5.1%, 지방은 3.5% 각각 상승할 것을 가정하고, 세입 예산을 편성했다. 정부는 정말로 집값 하락을 원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