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출신 20대 남성, 아무도 모르게 고독사로 사망

“청년들에게 홀로서기를 강요하는 사회 문제 바뀌어야”

20대 여성 권모 씨 “어쩔 수 없이 죽는 청년 고독사 이해”

20대 남성 최모 씨 “고독사한 사람들, 나와 다르지 않다”

“청년 고독사 위험군 찾아 발로 뛰어야 하는 시대”

“무리한 홀로서기”…‘청년 고독사’에 공감하는 20대 [죽음보다 무서운 외로움]
올해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기 시작한 최모 씨가 지난 7월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자택에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김희량 수습기자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김희량 수습기자] 26살 강민혁(가명) 씨가 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보육원 출신인 그는 경북 김천에서 홀로 살았다. 같이 사는 가족도 없었다. 심하게 앓았던 천식을, 그는 ‘그저 참아야 하는 병’으로만 알고 지냈다. 직장도 잡히지 않아 벌이도 시원치 않았다. 1~2주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하루하루 버티는 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들과도 점차 연락이 끊겼다.

그를 알았던 김성민(36) 씨는 다른 지인의 전화로 강씨 사망 소식을 들었다. 경찰에게 사인(死因)을 물었는데, 담당 수사관은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 “피 섞인 가족만 가족인 건 아니지 않냐고 당시 경찰에게 따져 물었다”며 “왜 내가 알아야 하는지를 경찰에게 증명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강씨가 장례식 없이 고독사로 처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씨는 “천식 때문인지, 음식을 못 먹어서인지 아직도 죽은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강씨는 보호종료아동(아동복지시설 등에서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에 퇴소하는 아동)이었다. 김씨는 “(강)민혁이는 보육원에서 자랐는데 보호종료아동이 된 이후에는 본인이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점이 부끄러워 연락을 내게 안 한 것 같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어 “자신을 기대해주거나 돌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삶의 원동력이 생기는데, 그런 존재가 없는 청년일수록 삶을 포기하기 쉬운 듯하다”며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는데, 우리 청년들에게 ‘성인이니까, 청년이니까’ 홀로서기 하라고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는 이제 사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독사는 더 이상 청년에게 낯선 말이 아니다. 헤럴드경제가 만난 20대 1인가구 청년들은 하나같이 “가끔 사는 게 너무 버겁다”며 “고독사를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그게 왜 가능한지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경기도에 사는 취업준비생 권모(28·여) 씨는 혼자 사는 자신의 친구가 호흡곤란이 와 응급실에 데려간 경험을 회상했다. 당시 응급실 병원비가 ‘17만원’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병원을 무서워하게 됐다며 권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권씨는 “그때 당장 20만원이 없었다”며 “‘아프면 죽는 거구나’라고 본능적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17만원은 큰돈이 아니겠지만, 홀로 생활하는 사람에겐 경제적 상황에 따라 생과 사를 가를 수도 있는 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다.

“무리한 홀로서기”…‘청년 고독사’에 공감하는 20대 [죽음보다 무서운 외로움]
지난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 캠퍼스 인근 원룸촌에서 청년들이 걸어가고 있다. 김희량 수습기자

이후 권씨는 습관처럼 약통을 곁에 두고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가래·콧물 날 때 먹으라고 보내 준 약을 보여주며 “이게 생각보다 종류가 많은데 알약 색깔만 봐도 무슨 약인지 다 외울 정도”라고 말했다.

권씨는 서울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살던 곳에서 1시간30분 거리 신도시로 이사했다. 그는 취업 준비 과정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권씨는 “대학생 때 부모님께 손 벌리지도 않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며 “취업하고 결혼도 해야 하는 나이인데, 나는 아직 취업도 어려워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내가 눈이 높은 걸까, 낙오자가 되는 걸까’ 하는 생각에 빠질 때, 깊은 고독감에 빠진다고 했다. 이어 “정말 어쩔 수 없어서 죽게 되는, 청년들의 고독사도 있을 것”이라며 “그런 죽음을 ‘나약해서 그렇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최모(20·남) 씨는 난생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며 홀로서기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그는 비대면 과제로 밤을 새우는 날 ‘온라인 과제방’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최씨는 “(이렇게 온라인 대화방을 만들면) 주변에 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스스로에게 의지를 북돋고 (겉으로) 힘든 내색을 하지 않기 위해 이런 방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최근에 읽어 본 고독사 관련 자료를 거론하며 “고독사한 이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최씨는 “처음에는 사망한 이들의 사교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을 스스로 독려하는 격려 포스트잇이 그들에게도 있는 것을 봤다”며 “그때 그들도 나랑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집 벽 한 켠에도 ‘좌절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라’며 스스로를 북돋는 문구가 담긴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고독사한 청년의 장례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나눔과나눔의 김민석(27·남) 팀장은 “요즘 청년들이 느끼는 우리 사회는 ‘한번 무너진 사람에게 재기하도록 배려해주는 곳’이 아니다”며 “조금만 삐끗해도 인생 끝난다고 생각하는 청년층이 느끼는 고립감은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